# 계란에 브랜드를 만든 바이탈 팜스의 성장 과정

> 2026-03-23 · How I Built This · 큐레이션 김태우
> https://challengekim.com/insights/계란에-브랜드를-만든-바이탈-팜스의-성장-과정
> 원문: https://art19.com/shows/how-i-built-this/episodes/5ab8f37a-6adc-49bc-8bf7-8c479364a912

## 핵심 요약

- 맷 오헤이어는 과거 농장에서 방목한 닭의 계란을 접한 경험을 바탕으로 바이탈 팜스를 시작했다.
- 초기 식당들은 기존 계란보다 훨씬 비싼 가격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생산된 계란 일부는 푸드뱅크로 보냈다.
- 홀푸드의 지역 매장 입점이 판매의 전환점이 됐지만, 포장 표시가 규정에 맞지 않아 한때 매대에서 철수했다.
- 오헤이어는 농가와 구매 계약을 맺고 같은 기준으로 생산한 계란을 단일 브랜드로 판매하는 방식을 택했다.

## 여러 사업을 거쳐 다시 농장으로

오헤이어는 카펫 청소업, 기업 간 물물교환망, 항공사 직원 대상 여행업을 운영했다. 여행업은 정점에 연매출 약 5,000만 달러를 올렸지만, 그는 회사를 키우는 일에 비해 일상 운영에는 약했다고 돌아봤다. 2001년 9·11 테러 뒤 여행 수요가 급감하자 회사를 매각했고, 이후 전세 요트의 선장과 요리사로 일했다.

그 무렵 오헤이어는 홀푸드 창업자 존 매키의 ‘의식 있는 자본주의’에 관한 글을 읽었다. 이익뿐 아니라 고객, 직원, 주주, 공급업체, 지역사회와 환경을 함께 고려한다는 구상이었다. 매키와의 대화에서는 방목 계란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방법을 논의했다. 오헤이어는 농가마다 같은 사육 기준을 따르게 하고 생산된 계란을 계약에 따라 사들여 하나의 브랜드로 팔자는 구상을 제시했다.

## 20마리에서 시작한 생산 실험

2007년 오헤이어는 텍사스 오스틴 남부의 27에이커 땅을 매입했다. 처음에는 산란계 20마리를 들였고, 이어 병아리 1,000마리를 키웠다. 중고 트레일러에 산란 상자를 설치하고 울타리와 트레일러를 옮겨 닭이 새로운 풀밭에 접근하도록 했다.

방목만으로 사료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오헤이어는 닭이 알을 계속 낳으려면 매일 필요한 양의 단백질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점을 시행착오로 확인하고 곡물 사료를 줬다. 텍사스의 여름에는 풀이 마르는 계절적 문제도 있었다. 그는 풀밭에서 먹이를 찾는 닭의 계란이 진한 주황색 노른자와 다른 맛을 낸다고 설명했지만, 닭마다 실제로 먹는 것이 달라 영양상의 이점은 주장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식당의 거절과 첫 유통 주문

오헤이어는 처음에 식당을 고객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식당들은 한 다스에 약 89센트인 계란을 살 수 있었고, 그가 제시한 약 4달러를 지불하려 하지 않았다. 팔지 못한 계란은 푸드뱅크로 가져갔다. 오스틴의 식당 폰다 산미겔이 매주 두 상자를 구매하면서 첫 거래처가 생겼다.

더 큰 주문은 홀푸드의 시카고·중서부 지역에서 왔다. 당시 바이탈 팜스는 현지 오스틴의 홀푸드에도 입점하지 않은 상태였다. 첫 주문을 채우기 위해 오헤이어는 계란을 손으로 씻어 포장했다. 하지만 입점 몇 주 뒤 계란의 크기와 등급 등 필수 표시가 빠져 해당 지역 매대에서 제품이 철수했다. 표시를 고쳐 약 5주 뒤 다시 판매했다.

2009년께 홀푸드에서 받은 10만 달러 대출에 대해 오헤이어는 사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자금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홀푸드와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뜻이 컸다고 설명했다. 당시 홀푸드의 구매 결정은 지역별로 이뤄졌으며, 바이탈 팜스가 전국 지역에 들어가기까지는 2015\~2016년이 걸렸다.

## 농가 계약망과 운영 기준

자체 농장만으로는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바이탈 팜스는 오스틴 인근 농가를 추가한 뒤 아칸소의 농가와도 협력했다. 오헤이어에 따르면 회사는 닭 한 마리당 야외 공간 108제곱피트, 즉 헥타르당 1,000마리라는 기준을 채택했다. 농가를 직접 방문해 사육 환경을 확인하고, 계약 가격에 따라 계란을 구매했다. 그는 농가를 단순 납품처가 아닌 사업의 이해관계자로 대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운영 인력도 보강했다. 오헤이어는 2010년께 제이슨 존스에게 지분 20%를 20만 달러에 팔고 채용과 농가 협력 등 일상 운영을 맡겼다. 2014\~2015년에는 아칸소 협력사의 농가망을 인수했다. 오헤이어는 이를 통해 농가와 직접 관계를 맺고 기준을 더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 가격과 브랜드가 안고 있는 조건

바이탈 팜스는 계란 상자를 칠판 그림처럼 꾸며 매대에서 사육 방식과 제품의 특징을 전달했다. 초기 소매가격은 한 다스에 4.99달러였다. 오헤이어는 매장에서 제품을 발견한 고객들의 입소문이 판매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높은 가격에는 생산 방식의 비용이 따른다. 오헤이어는 농가가 시설 자금을 빌릴 때 금리가 오르면 회사도 농가에 더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바이탈 팜스의 미국 계란 시장 점유율을 4% 미만으로 추정했다. 방목 계란 브랜드가 성장했어도 시장 전체의 사육 방식을 바꿨다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바이탈 팜스의 성장은 계란의 차이를 소비자에게 보여주는 일과, 그 차이를 여러 농가에서 지속해서 생산하는 일을 함께 해결해 온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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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을 바탕으로 AI 가 한국어로 요약·재구성한 글입니다. 인용·수치는 원문 링크에서 확인해 주세요. [원문 링크](https://art19.com/shows/how-i-built-this/episodes/5ab8f37a-6adc-49bc-8bf7-8c479364a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