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마리아 레사는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려워지면 제도가 약해지고 권력의 책임을 묻기도 어려워진다고 봤다.
- 뉴스 조직은 플랫폼의 유입 감소와 AI 기업의 콘텐츠 수집 비용을 동시에 감당하고 있다. 래플러는 기술·데이터 사업으로 수익원을 넓혔다.
- 레사는 소셜미디어가 주의를, AI 챗봇이 친밀감을, AI 에이전트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겨냥한다고 경고했다.
- 대안으로는 공익을 위한 기술, 여러 조직이 연결되는 뉴스 네트워크, 공동 안전 도구와 국제 협력을 제시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보에서 시작된다
마스터스 오브 스케일 서밋 2026에서 노벨상 수상자이자 탐사보도 기자인 마리아 레사는 링크드인 공동창업자 리드 호프먼, 진행자와 함께 빅테크의 권력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논했다. 기술이 정보 유통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사실에 기반한 공론장과 권력의 책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가 대화의 쟁점이었다.
레사는 필리핀 뉴스 조직 래플러를 이끌며 겪은 일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회사에는 10건, 자신에게는 11건의 사건이 제기됐으며 거의 10년 동안 이동의 자유를 제약받았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에 참석하는 데도 필리핀 대법원의 여행 허가가 필요했다.
그는 국가 권력과 기술 기업의 권력을 나란히 놓았다. 자신과 래플러를 탄압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책임을 추궁받게 됐지만 거대 플랫폼 경영자는 더 큰 권력을 갖게 됐다고 봤다. 레사는 필리핀에서 페이스북이 사실상 인터넷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경험을 들어 기술 기업의 결정이 한 사회의 정보 환경 전체를 바꿀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호프먼은 실리콘밸리가 스스로를 재정립할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그러려면 기술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진실·질서·책임은 함께 무너진다
레사는 민주주의가 마주한 문제를 진실의 위기, 질서의 위기, 책임의 위기라는 세 단계로 설명했다. 시민이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못하면 제도가 내부에서부터 약해지고 법의 지배가 흔들리면 사회를 조직하고 권력에 책임을 묻는 장치도 작동하기 어려워진다고 봤다.
그가 소셜미디어에서 주목한 것은 거짓과 감정의 확산 방식이었다. 두려움과 분노, 증오를 자극하는 정보가 퍼지는 환경에서는 특정 집단을 향한 공격도 커진다. 레사는 2017년 필리핀에서 여성 기자들이 남성 기자보다 적어도 10배 더 많은 공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AI를 우려한 이유도 이와 맞닿아 있었다. 레사는 소셜미디어가 사람의 주의를 붙잡아 수익을 얻는 구조를 만들었다면 대규모 언어모델 기반 챗봇은 친밀감에 파고든다고 봤다. 다음 단계인 AI 에이전트와 여러 에이전트의 협업은 사람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에 영향을 준다고 경고했다.
레사는 기술의 성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사람이 무엇을 믿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에 영향을 주는 시스템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를 요구했다.
플랫폼의 변화가 뉴스의 수익을 끊는다
래플러가 겪은 정보의 위기는 언론사의 사업 문제와도 맞닿아 있었다. 레사는 래플러를 약 100~120명이 일하는 연간 약 500만 달러 규모의 작은 뉴스 조직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현재 뉴스 산업이 시장 실패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검색 결과에서 답을 얻고 원문을 클릭하지 않는 ‘제로클릭 검색’이 늘면서 필리핀에서는 뉴스 사이트로 들어오는 검색 유입이 85% 줄었다고 말했다. 한때 주요 뉴스 유통 창구였던 페이스북에서도 유입이 크게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독자가 이미 해당 언론을 알고 접속하지 않으면 새로 발견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여기에 AI 기업의 콘텐츠 수집으로 비용 부담도 늘어난다. 레사는 AI 기업들이 래플러의 기사를 자동으로 수집하면 서버 비용이 올라간다고 지적했다. 콘텐츠를 만든 언론사가 다른 기업의 수집 활동에 따른 비용까지 부담한다.
레사는 단순히 방문자가 줄어드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을 확인하고 보도하는 조직은 계속 비용을 쓰지만 그 기사를 유통하고 재사용하는 기술 환경은 언론사의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공격을 분석하는 역량이 새 사업이 됐다
래플러는 정부의 폐쇄 시도 이후 수익원을 바꿔야 했다. 레사에 따르면 2018년 정부가 회사를 닫으려 한 뒤 4개월 만에 광고 매출이 49% 줄었다.
래플러는 기술과 데이터를 다루는 별도 회사 너브를 만들었다. 자연어처리, 즉 컴퓨터로 언어를 분석하는 기술을 활용해 래플러를 공격하는 메시지가 어떤 묶음으로 나타나는지, 어떤 네트워크가 이를 퍼뜨리는지 파악했다. 자신들을 방어하는 데 필요했던 분석 역량을 사업으로 확장했다.
레사는 이 사업이 현재 수익의 약 40%를 차지하며 광고 의존도를 낮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조직의 결속도 생존 과정의 한 축이었다. 정부가 처음 폐쇄를 시도했을 때 레사는 직원들에게 떠나고 싶다면 새 일자리를 찾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당시 기자 가운데 떠난 사람은 없었다고 회고했다. 사명감만으로 비용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래플러는 보도를 이어가기 위해 실제로 수익 구조를 바꿨다.
공익 기술은 직접 만들 수 있다
레사는 기존 플랫폼에 개선을 요청하는 데서 더 나아가 공익을 위한 기술을 직접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래플러가 만든 채팅 앱이 그 사례다.
래플러는 매트릭스 프로토콜을 바탕으로 2023년 앱을 선보였다. 레사는 여러 뉴스 조직이 연결되는 연합형 네트워크를 지향했다. 필리핀 뉴스 조직 65곳이 참여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로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모델에서 이용자를 자극해 붙잡아 두는 기능보다 정보의 신뢰성을 강조했다. 조작적인 방식으로 관심을 끌지 않는 공간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정보의 신뢰성을 지키는 데 목적을 둘 수 있다고 봤다. 레사는 이런 연합형 네트워크를 뉴스의 미래로 제시했다.
기술 기업 간 협력 사례도 소개했다. 온라인 안전 도구를 공동으로 제공하는 ROOST에서는 여러 기업이 신뢰·안전 도구를 내놓고 이를 무료로 배포하는 데 협력했다고 말했다. 레사는 이를 여러 서비스가 함께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 기반으로 봤다.
한 나라의 대응만으로는 부족하다
레사는 기술의 이익을 활용하려는 국가들이 기술 판매자의 설명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기술을 공익에 어떻게 쓸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하지만 그 선택에 따르는 대가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유엔의 AI 관련 활동과 국가 간 협력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느 한 국가도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중간 규모 국가들과 아시아, 글로벌 사우스가 함께 대응해야 한다고 봤다. 개별 국가의 힘은 약해 보여도 연결되면 버틸 수 있다는 구상이었다.
레사는 이를 자신의 책에서 제시한 이해·방어·구축의 흐름과 연결했다. 개인과 공동체, 언론과 제도를 지키는 작업에 더해 어떤 기술과 세계를 만들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화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문제는 기술 기업의 가치 선언에 머물지 않았다. 사실을 생산하는 조직이 살아남을 수익 구조, 이용자의 판단을 존중하는 서비스, 기업과 국가가 함께 마련하는 책임 체계가 핵심으로 떠올랐다. 래플러의 경험에서 이 세 과제는 서로 맞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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