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마이클 닐슨은 실험 결과가 어느 이론을 버려야 하는지 곧바로 알려주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 알파폴드의 성과에는 AI 모델뿐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단백질 구조 데이터 축적이 기여했다.
- 새로운 분야가 열리면 연구의 기회도 새로 생긴다. 닐슨은 과학·기술의 가능한 경로가 현재 알려진 것보다 훨씬 넓을 수 있다고 본다.
- 서로 다른 문명이 다른 기술을 발전시켰다면 교류의 이익이 생길 수 있다. 다만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일과 제조 역량을 옮기는 일은 다르다.
실험 결과가 곧 이론의 결론은 아니다
닐슨은 마이컬슨·몰리 실험을 과학사의 단순한 성공담으로 읽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실험은 빛이 전파된다고 여겨졌던 매질인 에테르에 관한 여러 이론 중 일부를 시험했다. 예상했던 에테르 바람은 관측되지 않았지만, 당시 물리학자들에게 그것이 곧 모든 에테르 이론의 부정을 뜻하지는 않았다. 마이컬슨도 이후 오랫동안 에테르를 믿었다.
로런츠는 기준계 사이의 변환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면서도 이를 에테르를 통해 움직일 때의 효과로 해석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공간과 시간 자체를 다르게 이해했다. 대담에서 닐슨은 뛰어난 과학자들도 새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으며, 과학 공동체에 그런 판단을 일괄적으로 내리는 절차는 없다고 강조했다.
천왕성 궤도의 어긋남에서 해왕성을 예측한 일과 수성 궤도의 어긋남에서 가상의 행성을 찾다가 일반상대성이론에 이른 일은 같은 종류의 이상 현상이 서로 다른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파이오니어 탐사선의 예상 밖 가속도는 우주선에서 방출되는 열복사의 비대칭으로 설명된다. 이상 현상을 발견했다는 사실만으로 새 물리학이 필요한지 미리 가려내기는 어렵다.
AI가 줄이는 병목과 남는 병목
대담은 AI가 과학의 검증 고리, 즉 가설을 내고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을 빠르게 만들 수 있는지로 이어졌다. 닐슨은 알파폴드를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하면서도 단백질 구조 예측의 성과를 AI 모델만의 결과로 보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단백질 데이터 은행에는 여러 실험 기법과 오랜 투자를 통해 얻은 약 18만 개의 구조가 축적돼 있었다.
알파폴드 같은 복잡한 모델이 과학적 설명인지도 열린 문제로 남았다. 닐슨은 모델 자체를 고전적인 의미의 설명으로 보지 않는 관점, 모델 내부에서 부분적인 설명을 추출하는 관점, 복잡한 모델을 새로운 종류의 연구 대상으로 다루는 관점을 제시했다. 다만 알파폴드에서 그런 설명을 얼마나 추출했는지는 자신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AI가 코딩 시간을 줄이더라도 흥미로운 설계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일이 새 병목이 될 수 있다고 논했다. 과학에서도 실험을 빨리 확인하는 능력만으로 많은 가능한 이론 중 어느 연구 경로를 이어갈지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대담의 핵심 문제의식이다.
기술의 나무에는 아직 보이지 않는 가지가 있다
닐슨은 과학과 기술의 가능성을 가지가 계속 뻗는 ‘기술의 나무’에 비유했다. 처치와 튜링이 계산의 기본 개념을 제시한 뒤에도 컴퓨터과학에서는 공개키 암호 같은 새로운 원리가 발견됐다. 물질의 상태 역시 학교에서 배우는 몇 가지에 그치지 않고 초전도체, 초유체,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등으로 연구 대상이 넓어졌다. 기본 법칙을 아는 것과 그 안의 가능성을 모두 탐색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설명이다.
기존 분야에서는 연구를 더 투입해야 같은 속도의 성과를 유지하는 수확 체감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닐슨은 아직 보이지 않던 새 분야가 열리면 탐색할 대상 자체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컴퓨터과학은 수학과 논리학의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등장한 사례로 제시됐다. 그는 새 분야가 언제, 어떻게 열리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외계 문명의 기술은 왜 다를 수 있나
기술의 나무가 충분히 크다면 지각 방식과 환경, 이전의 발견에 따라 문명마다 다른 가지를 탐색할 수 있다. 닐슨은 이를 경로 의존성에 관한 추측으로 제시했다. 지적인 문명이 모두 같은 표기법이나 기술 체계에 도달한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는 뜻이다.
그는 외계 문명의 알고리즘 전체를 받는 상황을 상상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풍부하더라도 인간이 그 내용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자연의 단백질을 비슷한 사례로 들었다. 수많은 단백질이 알려져 있지만 인간은 개별 단백질의 작동 방식도 계속 연구하고 있다.
서로 다른 능력을 발전시킨 문명 사이에는 교류의 이익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닐슨은 아이디어를 보내는 것과 그것을 만들 제조 역량을 갖추는 것이 다르다고 짚었다. 진행자 드워케시 파텔도 거래 비용과 힘의 격차를 들어, 비교우위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실제 교류가 이뤄진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외계 문명 간 교역은 대담에서 제시된 사고실험이지 관측된 전망이 아니다.
발견을 떠받치는 도구와 제도
닐슨은 양자컴퓨팅이 1980년대에 연구 분야로 자리 잡은 배경으로 개인용 컴퓨터에 대한 관심과 단일 이온을 다루는 기술이 비슷한 시기에 발전한 점을 들었다. 더 이른 시기에 관련 지식을 가진 연구자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같은 분야가 열리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연구 결과를 어떻게 공유하고 공로를 인정할지도 진보에 영향을 준다. 닐슨은 물리학자들이 경쟁이 치열하므로 논문 초고를 빨리 공개해야 한다고 말하는 반면, 생물학자들은 경쟁이 치열하므로 학술지 발표 전 공개를 피해야 한다고 말하던 사례를 소개했다. 같은 경쟁을 두고도 분야별 관행이 달랐다. 대형 입자가속기 연구에서는 검출기, 입자 궤적 분석, 데이터 처리 등 서로 다른 전문 지식이 결합되며, 한 사람이 모든 부분을 깊이 이해하기는 어렵다고도 설명했다.
빠른 작업과 깊은 이해
대담 말미에 닐슨은 창의적 작업을 반복해서 처리할 수 있는 일과 결과가 불확실해 오래 붙들어야 하는 일로 나눴다. 그는 후자에는 여러 사람을 만나고 막힌 문제와 씨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텔은 AI와 대화하며 자료를 빠르게 훑을 수는 있지만, 스스로 중간 단계를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가 얕게 남을 수 있다고 했다. 닐슨 역시 일상적인 작업을 AI에 맡기는 효용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직접 풀어야 할 문제를 대신하는지는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대담이 그리는 과학의 진보는 한 번의 실험이나 보편적인 발견 절차로 환원되지 않는다. 데이터와 도구, 여러 연구 경로, 지식을 공유하는 제도가 함께 작동하며, 어느 곳이 다음 병목이 될지는 탐색을 계속해야 드러난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