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세라 페인은 전쟁의 성패를 전투에서 이겼는지가 아니라 처음 추구한 정치적 목표를 달성했는지로 판단한다.
  • 공격을 더 이어갈 때 얻는 이익보다 위험과 비용이 커지는 지점이 있다. 승리 뒤 제3국의 개입은 그 지점을 넘었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제한된 목표를 이루고 미국의 중재로 종전에 이르렀다. 다만 어느 사건이 종전을 결정했는지는 하나로 단정하기 어렵다.
  • 지역 전쟁에 외부 세력이 개입하거나 패배한 쪽이 반란을 이어가면, 전쟁의 규모와 종전 비용이 달라진다.

러일전쟁: 전투의 승리와 전쟁의 목표

페인은 러일전쟁을 일본 입장에서 종전의 모범 사례로 제시한다. 러시아는 영토, 인구, 산업 기반과 군사력에서 일본보다 컸다. 일본이 노린 것은 러시아 정권의 전복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밀어내는 것이었다. 전쟁 뒤 일본은 그 목표에 더해 만주의 남부 철도 이권과 항구, 사할린 남부도 얻었다.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일본은 해상 보급로를 위협하는 러시아 함대를 무력화하려고 여순항을 포위했다. 이 포위에는 당시 일본이 보유한 네 개 군 가운데 하나가 묶였다. 노기 장군의 정면 공격에서는 약 4만5천 명의 병력을 잃었다는 것이 페인의 설명이다. 일본군이 203고지를 점령한 뒤 포격을 통해 항구의 함대를 파괴했지만, 여순항 함락만으로 전쟁이 끝나지는 않았다.

페인이 강조하는 구분은 작전의 한계점과 전쟁 전체에서 승리의 한계점이다. 전자는 공격을 더 밀어붙이면 전력을 잃어 방어조차 어려워지는 지점이다. 후자는 전쟁에서 더 얻으려다 이익보다 큰 비용과 위험을 떠안는 지점이다. 여순항에서는 203고지 점령을 작전의 한계점으로 볼 수도 있고, 함대 파괴가 실제 목표였으므로 그때까지 공격이 필요했다고 볼 수도 있다. 페인은 두 해석 모두 근거에 따라 논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일본은 언제 멈춰야 했나

전쟁 전체의 한계점에도 페인은 다섯 가지 후보를 제시한다. 첫째는 1905년 러시아의 국내 혼란이다. 전황이 나빠지는 가운데 시위대에 대한 발포는 차르 정부의 정당성을 훼손했다. 둘째는 육상 전투인 봉천 전투다. 일본은 병력을 거의 소진했지만,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수송 능력이 늘면서 러시아는 전선에 더 많은 병력을 보낼 수 있었다.

셋째는 재정이다. 양국 모두 전쟁 자금을 빌렸고, 페인의 설명에 따르면 봉천 전투 뒤 러시아는 필요한 추가 차관을 구하지 못했다. 넷째는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 함대가 입은 패배다. 다섯째는 일본의 사할린 점령이다. 러시아 영토를 점령한 사실이 협상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페인은 이 가운데 하나를 확정적인 종전 원인으로 고르지 않는다.

일본은 병력이 더 필요한 상황을 알고 있었고, 전쟁 전부터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중재를 종전 경로로 염두에 뒀다고 페인은 설명한다. 전장에서 이긴 뒤에도 상대가 언제 협상에 응할지, 자국이 얼마나 더 싸울 수 있을지를 따져야 했다는 뜻이다.

제한된 목표가 분명했던 걸프전

페인은 1차 걸프전을 목표가 명확했던 사례로 든다. 미국과 연합군의 목표는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와 쿠웨이트 정부 복구 등이었고, 페인의 설명에 따르면 이를 달성했다. 이라크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은 그 전쟁의 목표가 아니었다. 페인은 연합국들이 병력과 자금을 제공한 점, 이라크가 외교적으로 고립된 점도 결과를 설명하는 조건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제한된 목표는 상대 정부를 남겨둔 채 영토나 정책에 관한 양보를 얻는 것이다. 무제한 목표는 상대 정권을 무너뜨려 정치적으로 무력화하는 것이다. 후자는 목표 자체는 알아보기 쉽지만, 패배하면 존립이 걸린다고 여기는 상대의 저항을 키울 수 있다. 페인은 손자의 ‘사지’, 곧 물러날 길이 없어 필사적으로 싸우는 처지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한국전쟁에서 두 차례 바뀐 전쟁의 범위

페인은 한국전쟁에서 승리의 한계점을 두 차례 넘었다고 해석한다. 북한의 남침은 미국과 유엔 측의 개입을 불렀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미국 측은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는 목표로 나아갔고, 중국 국경에 가까워지면서 중국군이 참전했다. 각각 제3자의 개입으로 전쟁의 규모와 비용이 달라졌다는 설명이다.

페인은 이 사례를 통해 군사적으로 더 진격할 수 있다는 판단과 정치적으로 무엇을 얻으려는지는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쟁은 결국 분단된 한반도를 남겼지만, 그 결과에 이르는 비용은 커졌다.

지역 전쟁이 세계 전쟁으로 번질 때

미국 독립전쟁도 페인이 든 확대 사례다. 영국이 식민지의 대륙군과 대륙회의를 없애려 하자 전쟁이 길어졌고, 그동안 프랑스와 스페인 등이 개입했다. 영국은 여러 지역에서 전쟁을 치른 끝에 식민지보다 카리브해의 이익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고 페인은 설명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동맹 내부에서도 각국이 원하는 영토와 전장이 달랐다. 페인은 동맹국 모두를 만족시키면서 상대도 받아들일 합의를 만들기 어려웠던 점을 전쟁이 계속된 이유로 본다. 일본의 중국 침략 역시 중국 측의 지속적인 저항을 만났고, 일본이 중국에 들어가는 외부 지원을 끊으려 여러 지역을 공격하면서 전쟁 범위가 커졌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전장이 넓고 전쟁이 길어질수록 외부 세력이 개입할 시간도 늘어난다.

점령 뒤에도 끝나지 않는 싸움

상대의 정규군을 이겨도 통치가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페인에 따르면 중국에서 일본은 국민당의 정규군에 병력을 모으면 후방의 게릴라에 대응하기 어려웠고, 후방을 지키려고 병력을 흩으면 정규군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점령지를 유지하는 데 계속 비용이 드는 구조였다.

페인은 미국 독립전쟁의 대륙군과 민병대에서도 비슷한 비용 부과 방식을 찾는다. 외부에서 개입한 쪽보다 그곳에 사는 쪽이 전쟁의 목표를 더 절실하게 여긴다면, 점령 비용을 높여 외부 세력이 떠나기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라크전쟁은 정권 교체 뒤의 문제를 보여준다. 페인은 이라크 정권을 무너뜨린 뒤에는 국가 제도를 세우고 긴 국경을 통해 개입하는 주변 세력에 대응해야 했다고 지적한다. 첫 걸프전의 제한된 목표와 달리, 정권 교체는 승리 뒤 통치의 책임까지 가져왔다.

전쟁을 끝내는 일은 마지막 전투에서 이기는 것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페인이 제시한 사례에서는 목표의 범위, 상대가 계속 싸울 이유, 외부 세력의 개입 가능성, 추가 승리의 비용이 종전의 조건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