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뉴욕의 도시 건설자 로버트 모지스는 법률의 작은 조항을 활용해 공공기관의 사업 범위와 자금 조달 권한을 넓히고 이를 장기간 유지할 구조를 만들었다.
- 모지스의 영향력은 법적 권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빠른 사업 추진, 시민의 지지, 설계 인력과 연방 지원금 확보 능력으로 선출직 정치인들의 선택지를 좁혔다.
- 린든 존슨은 상원 다수당 원내대표의 빈약한 공식 권한을 보완하려고 동료 의원에게 필요한 자금·위원회 자리·법안 처리 기회를 장악했다.
- 존슨은 표결 전에 토론과 수정안의 범위를 정하고 서로 다른 법안과 이해관계를 묶어 협상을 주도했다.
- 두 사람의 사례에서 권력은 직함보다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자원과 절차를 얼마나 통제하는지에 달려 있었다.
직함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통제하느냐다
팟캐스터 드와르케시 파텔은 전기 작가 로버트 카로와의 인터뷰를 준비하며 카로가 쓴 로버트 모지스와 린든 존슨의 전기를 다시 읽었다. 이 영상 에세이는 그 과정에서 정리한 권력의 획득과 사용에 관한 분석이다. 중심 주제는 공식 직책에 적힌 권한을 넘어 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선택을 좌우하게 되는가다.
모지스는 선출직에 오른 적이 없지만 30년 넘게 뉴욕 시장이나 주지사보다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소개된다. 교량과 고속도로, 해변, 공원, 수영장 등 방대한 시설을 건설했다. 1964년까지 뉴욕주에 완공된 고속도로 899마일 가운데 모지스가 건설한 구간은 672마일이었다.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된 존슨의 출발점은 달랐다. 상원 다수당 원내대표에 올랐을 때 그가 확인한 공식 권한은 본회의에서 먼저 발언권을 얻는 권리 하나였다. 그런데도 그는 의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하나씩 자기 손에 모으며 상원을 이끄는 자리를 강력한 권력 기반으로 바꿨다.
모지스는 법률의 작은 조항으로 기관의 수명을 늘렸다
모지스가 활용한 핵심 조직은 정부가 공공 인프라를 건설하려고 설립하는 공공사업기관이었다. 원래 구상은 단순했다. 기관이 채권을 발행해 다리를 짓고 통행료로 빚을 모두 갚으면 요금소를 없애고 다리를 시에 넘긴 뒤 해산하는 방식이었다.
1933년 트라이버러 교량공사법에도 채권 상환 후 기관을 해산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채권 만기는 최장 40년이었고 예상 통행료 수입을 고려하면 그보다 일찍 상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지스는 다른 조항에 기존 채권을 새 채권으로 상환할 수 있다는 문장을 넣었다. 새 채권은 기관의 다른 사업 목적에도 쓸 수 있었다. 기존 채무가 끝나기 전에 새 채무를 만들면 기관의 존속 기간도 연장할 수 있었다.
사업 범위도 같은 방식으로 넓혔다. 처음에는 교량 두 개와 진입로를 건설하도록 했지만 연결 도로와 사업 용도에 어긋나지 않는 시설까지 지을 수 있게 했다. 모지스는 이를 넓게 해석해 교량과 도로로 이어진 공원이나 주거지까지 손댈 근거로 삼았다.
통행료 수입과 이를 바탕으로 한 차입 능력도 컸다. 1946년 뉴욕시가 법정 채무 한도에 도달하기 전까지 추가로 빌릴 수 있는 돈은 1억 5,000만 달러였지만 트라이버러 교량공사는 3억 6,000만 달러를 빌릴 수 있었다.
파텔은 모지스가 이 권한을 채권 계약으로 보호한 점에 주목한다. 모지스는 통행료 부과와 잉여금 보유 같은 권한을 채권 계약에 넣을 수 있도록 법률을 설계했다. 파텔은 정부의 계약 의무를 훼손하는 주법을 금지한 미국 헌법 조항 덕분에 정치권이 이 권한을 회수하기 어려워졌다고 해석했다. 차환으로 채권의 수명을 늘리면 권한을 보호하는 기간도 이어졌다.
정치인들이 모지스의 퇴장을 원하지 않은 이유
기관의 권한이 강하다고 그 수장의 자리가 자동으로 보장되지는 않는다. 모지스는 임기 중 해임에 공식 혐의와 청문회가 필요하도록 법을 만들었다. 카로는 그가 개인적으로 뇌물을 챙기는 데 관심이 없었다고 썼다. 사업 방향이나 주민 이주를 둘러싼 충돌을 개인 비위 혐의로 바꾸기는 어려웠다.
그는 한때 시와 주의 공직 12개를 동시에 맡기도 했다. 임명권자가 시장과 주지사로 나뉘어 있어 한 사람이 모든 자리에서 그를 몰아낼 수 없었다. 한 직책에서 해임하더라도 나머지 권한을 가진 모지스와 적이 되는 부담이 남았다.
더 큰 이유는 모지스가 정치인에게 필요한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그는 뉴욕시 공원국장 취임 후 첫 4개월 동안 작업반을 밤낮으로 가동해 공원 개보수 1,700건을 마쳤다. 시민들이 즐기는 해변과 공원, 수영장을 빠르게 공급했고 시장은 다음 선거 전에 준공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모지스는 대규모 설계·기술 인력도 확보했다. 연방정부가 새 지원 사업을 발표하면 이미 준비한 설계로 곧바로 착공할 수 있었다. 1936년 뉴욕은 대공황기 일자리 구제를 위해 연방정부가 마련한 전국 자금의 7분의 1을 받았다. 시장이 다른 사업을 원해도 독자적으로 계획을 만들 기술 역량이 부족했다. 모지스의 사업을 받아들이거나 아무것도 짓지 못하는 선택에 몰렸다.
이 때문에 그의 사임 위협은 협상 수단이 됐다. 시장이 사표를 받으면 진행 중인 사업과 배정 자금을 잃고 인기가 높은 공직자와 공개적으로 충돌해야 했다. 신문사 소유주들과의 친분도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건설의 수혜자들도 모지스를 지켰다. 은행은 경쟁입찰 없이 할인된 가격에 채권을 샀고 노조는 일자리를 얻었으며 정치권과 연결된 변호사와 정당 실세는 법률·보험 업무에서 이익을 얻었다. 모지스는 개인적으로 돈을 챙기지 않았지만 사업이 계속될수록 이익을 보는 유력 인사들의 연합을 만들었다.
존슨은 동료 의원에게 필요한 것을 장악했다
존슨은 원내대표가 되자 동료 의원의 정치적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법안을 본회의에 올리고 위원장에게 법안 처리를 설득하고 하원과 연결하고 텍사스 석유업계 인사에게 선거자금 지원을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위원회 배정도 중요한 수단이었다. 약 한 세기 동안 주로 선수에 따라 정해지던 자리 가운데 상당수를 존슨이 장악한 당 운영위원회에서 협상하도록 바꿨다. 좋은 위원회 자리를 원하면 그의 협조가 필요해졌다.
1957년 에스테스 키포버 상원의원이 중요한 안건에서 존슨에게 반대하자 그가 기대하던 외교위원회 자리는 같은 주에 훨씬 선수가 낮은 존 F. 케네디 의원에게 돌아갔다. 존슨은 필요한 것을 줄 수도, 주지 않을 수도 있는 위치를 확보했다.
다음 수단은 의제 통제였다. 당시 상원에서는 원칙적으로 토론 시간을 제한하지 않았고 법안과 무관한 수정안으로도 처리를 늦출 수 있었다. 의원 전원이 동의하는 만장일치 합의는 특정 법안의 토론 시간과 수정 기회를 제한하는 절차였다.
존슨은 이 합의가 마련되기 전에는 법안을 본회의에 올리지 않는 방식을 일상화했다. 공개 토론에서 의원의 생각이 바뀌거나 갑작스러운 수정안이 오랜 협상을 무너뜨리는 일을 막고 자신의 영향력이 잘 통하는 비공개 협상에서 표를 먼저 정리하려 했다.
서로 무관한 요구를 하나의 거래로 묶다
존슨의 세 번째 수단은 정보와 협상의 집중이었다. 각 위원회 직원에게 입안 상황을 보고하게 하고 보좌진에게 의원들의 움직임을 살피게 했다. 자신도 의원들과 대화하며 각자가 원하는 것과 양보할 수 없는 것을 파악했다.
1957년 민권법 협상이 대표적이다. 존슨은 대통령 출마를 염두에 두고 최소한의 민권법이라도 통과시키려 했다. 민권에 반대해온 남부 출신 정치인이라는 이력으로는 1960년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쟁점은 흑인 유권자의 등록을 막은 남부 선거관리 공무원의 사건을 배심원이 심리하도록 할지였다. 남부 의원들은 배심재판을 요구했다. 북부 의원들은 남부에서 배심원 자격을 등록 유권자로 제한하므로 흑인을 배제한 백인 배심원단이 백인 선거관리자를 유죄로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발했다.
존슨은 7개월에 걸쳐 다른 지역과 집단의 요구를 묶었다. 서부 의원들에게는 아이다호와 오리건 사이의 연방 댐 사업에 대한 표결을, 철도 노조의 영향력이 큰 중서부 지역 공화당 의원들에게는 파업 노동자의 배심재판 권리 확대를 제공했다. 온건파는 흑인도 연방 배심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을 얻었다.
동시에 남부 선거관리 공무원의 배심재판 보장은 남겼다. 법안의 효력이 약해지는 조건을 유지한 덕분에 남부 의원들은 장시간 발언으로 처리를 막는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기로 했다. 존슨은 하나의 쟁점에서 합의를 찾기보다 서로 다른 요구를 교환해 통과 가능한 조합을 만들었다.
권력을 얻은 과정과 사용한 목적은 같지 않았다
카로가 그린 두 사람의 변화는 반대 방향이었다. 모지스는 정실 인사를 정직하고 유능한 행정으로 바꾸려던 젊은 개혁가였다. 개혁이 좌절되자 이상을 실현하려면 권력이 필요하다고 배웠고 카로는 그가 점차 권력 자체를 추구하게 됐다고 서술했다.
반면 존슨은 경력의 상당 기간 동안 유력자에게 자신을 맞춘 기회주의자로 묘사된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뒤에는 1964년 민권법과 1965년 투표권법을 추진했다. 파텔은 존슨이 충분한 권력을 얻고 나서야 이전에는 잘 드러내지 않았던 이상을 실행했다고 본다.
두 사례를 관통하는 것은 자원과 절차의 통제다. 모지스는 자금과 건설 역량을, 존슨은 동료의 필요와 표결 과정을 장악했다. 그렇게 얻은 권력이 어떤 목적에 쓰이는지는 권력을 모으는 능력과 별개의 문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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