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폴 그레이엄은 좋은 취향이 없다고 가정하면 좋은 예술도, 예술을 잘 만드는 능력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 직접 그림을 배우며 작품의 질과 제작 능력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한 경험이 그의 논거다.
  • 예술 판단에는 명성이나 전시 장소 같은 외부 요인이 끼어들고, 전문가의 평가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 사람들의 반응이 완전히 제각각인 것은 아니므로 좋은 예술과 좋은 취향을 말할 수 있지만, 완벽한 순위를 매길 수는 없다.

좋은 취향을 부정하면 생기는 일

그레이엄은 취향을 여러 선호 가운데서도 예술에 대한 판단으로 좁혀 논의를 시작한다. 한 사람이 좋아하는 예술이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예술보다 낫다면, 앞선 사람의 취향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논증은 반대 가정에서 출발한다. 좋은 취향이 없다면 좋은 예술도 없다. 좋은 예술이 존재한다면 처음 보는 작가들의 작품 중 더 나은 것을 고르는 사람이 더 좋은 취향을 가졌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예술을 부정하면 예술가가 자신의 일을 잘한다는 평가도 성립하지 않는다. 인기 있는 소설가라는 말은 가능해도 좋은 소설가라는 말은 할 수 없게 된다.

이 가정은 유명 화가 둘을 비교할 수 없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어떤 화가가 무작위로 고른 여덟 살 아이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린다는 판단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림을 배우며 확인한 실력의 차이

그레이엄은 어릴 때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므로 좋은 취향도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바뀐 계기는 그림 공부였다. 그림도 다른 일처럼 잘하거나 못할 수 있었고,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자신과 레오나르도, 벨리니 사이의 실력 차이도 분명하게 느꼈다.

그에게 이 경험은 예술가가 작품을 만드는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됐다. 그렇다면 좋은 예술이 존재할 수 있고, 이를 알아보는 좋은 취향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의견 차이가 판단을 흐리는 이유

그레이엄은 사람들이 좋은 취향을 의심하는 첫 번째 이유로 평가의 불일치를 든다. 작품을 볼 때 작가가 유명한지, 소재가 매력적인지, 유명 미술관에 걸려 있는지 같은 요소가 반응에 영향을 준다. 작품 자체에 대한 판단과 다른 영향이 뒤섞이는 셈이다.

좋은 취향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틀릴 수 있다. 한 시대의 전문가들이 높이 평가한 그림과 몇 세대 뒤 전문가들이 높이 평가한 그림이 크게 다를 때가 있다. 그레이엄은 이런 불일치가 좋은 예술이 없다는 인상을 주지만, 그림을 직접 그려 보고 벨리니의 작품과 비교하는 것처럼 제작 능력의 차이를 살피면 그 판단을 다시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

보는 사람의 반응과 작품의 질

두 번째 의문은 작품의 좋음이 물체 안에 있는 성질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술을 보는 사람마다 머릿속에서 다른 반응이 일어난다면 누구의 판단을 따라야 하는가.

그레이엄은 예술의 목적이 사람에게 작용하는 데 있고, 사람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고 답한다. 사람들의 반응은 무작위가 아니므로 작품은 사람에게 작용하도록 만들어질 수 있으며, 그 작용을 얼마나 잘 해내는지에 따라 좋고 나쁨을 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백신이 사람마다 다르게 작용해도 그 효과를 논할 수 있다는 사례를 비유로 든다.

다만 예술 판단은 백신의 효과를 따지는 일보다 복잡하다고 인정한다. 작가의 명성 같은 외부 영향을 덜 받으면서 예술을 깊이 아는 사람들의 반응을 고려하더라도 의견 차이는 남는다. 특히 최근 작품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작품이나 판단 능력을 하나의 완전한 순서로 세울 수는 없지만, 일부는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

그레이엄의 주장은 누구나 동의할 완벽한 취향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판단의 혼란과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예술을 만드는 능력과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근거로 좋은 취향은 가능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