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AI 투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형 벤처펀드가 예상보다 빨리 자금을 소진하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투자 제안을 받은 뒤 실제 입금까지 수개월을 기다리는 사례도 나타났다.
- 펀드 출자자의 자산 가치가 올라도 현금 회수가 뒤따르지 않으면 새 펀드에 넣을 돈은 부족하다. 소수 대형 비상장기업에 집중된 투자와 회수 구조가 이 압박을 키운다.
- AI 기업의 높은 매출 성장률은 마진, 고객 집중도, 계약 형태와 함께 봐야 한다. 지난달 매출을 12배 한 수치와 장기 계약으로 확보한 반복 매출은 다르다.
- 연산 자원 수요는 기술적 필요뿐 아니라 자금 조달 능력에 달려 있다. 특히 인프라 공급업체가 감당할 만한 조건으로 부채를 조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변수다.
- 거대한 시장에 대한 기대가 초기 투자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다. 출연자는 모두가 주목하는 기업을 뒤쫓기보다 뛰어난 창업자가 먼저 발견한 시장에서 기회를 찾는 접근을 강조했다.
투자 약속은 빠른데 입금은 늦어진다
투자자 패트릭 오쇼너시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Invest Like the Best’에서 벤처투자사 Abstract의 한 투자자가 실리콘밸리의 AI 투자 시장을 짚었다. 기업에 몰리는 투자금과 그 돈을 공급하는 펀드의 현금 사정이 얼마나 보조를 맞추고 있는지가 대화의 중심이었다.
출연자가 묘사한 시장에서는 투자 유치와 후속 투자 간격이 모두 짧아졌다. 인기 기업의 투자 기회를 놓친 투자사는 다음 라운드까지 기다리지 않고 같은 시점에 앞선 투자자보다 3~5배 높은 기업가치를 받아들이면서 참여하기도 한다. 그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기업이 한꺼번에 모든 돈을 같은 가격으로 조달하지 않으려는 사정도 있어 가격 차이 자체를 무조건 불건전한 신호로 보지는 않았다.
문제는 투자 의사와 즉시 쓸 수 있는 현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출연자는 대화 시점에 앞선 8~12주 동안 투자 조건을 제시하면서 납입을 늦춰 달라는 사례를 봤다고 말했다. 한 투자사는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하면서 실제 납입은 약 3개월 뒤로 제안했다. 기존 펀드 자금은 이미 다른 기업에 배정됐고 새 펀드의 서류 작업과 자금 집행 준비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례에서는 총 5,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 제안 가운데 한 투자사가 4,000만 달러를 맡기로 했다. 하지만 거래 종결 때 보낼 수 있는 돈은 500만 달러였고 나머지는 8~10주 뒤에 납입하겠다고 했다. 출연자는 이들이 결국 자금을 마련할 것으로 봤지만 이런 시차에서 투자 집행 속도의 부담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펀드도 더 자주, 더 큰돈을 구해야 한다
벤처펀드는 보통 18~24개월 동안 신규 투자를 집행하고 별도로 후속 투자 자금을 남겨 둔다. 그런데 출연자가 관찰한 대형 운용사들은 최근 18~24개월 사이 두세 차례 자금을 모집했다. 당초 예상보다 투자 속도가 훨씬 빨라진 셈이다.
그는 25억 달러를 모아 7월부터 투자한 뒤 이듬해 1월에 다시 자금 모집에 나서겠다는 펀드를 예로 들었다. 또 다른 펀드는 30억 달러를 받은 지 9개월 만에 50억 달러를 새로 구하고 있었다.
원하는 기업의 수와 가격이 모두 예상을 웃돌면 같은 지분을 확보하는 데 더 많은 돈이 든다. 펀드 규모를 유지한다면 선택은 두 가지다. 투자 기업 수를 줄여 지분율을 지키거나 기업 수를 유지하면서 각 기업의 지분을 덜 가져가는 것이다. 전자는 기업을 고르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후자는 성공한 기업에서 얻을 수익의 크기가 줄어든다.
펀드에 돈을 대는 출자자, 즉 LP의 사정도 넉넉하지 않다. 출연자는 이들이 기대했던 만큼 현금을 회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러 펀드에 나눠 투자했어도 실제 자산 가치는 SpaceX, Anthropic, OpenAI, Databricks 같은 소수 기업에 집중될 수 있다. 이 기업들의 투자금을 회수할 기회가 생기지 않으면 장부상 자산이 커도 새 펀드에 출자할 현금은 부족하다.
매출 성장률만으로는 사업을 비교할 수 없다
출연자는 지금의 열기가 2021년과 닮았다고 봤다. 빠른 투자 결정,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 제시한 투자 조건을 철회하거나 재협상하는 행동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다만 실제 제품의 가치와 보급 속도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뿐 아니라 신기술을 일찍 받아들이지 않던 가족까지 투자 기업의 제품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연간 매출이 10배, 15배, 20배 늘었다는 숫자를 그대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 출연자는 이런 고성장 기업의 매출에는 대개 살펴볼 조건이 있다고 지적했다. 마진이 낮거나 적자일 수 있고 소수 고객 의존도가 높거나 장기 계약 대신 사용량과 소비자 수요에 따라 매출이 변할 수 있다. 데이터를 판매한 지난달 매출에 12를 곱해 연간 환산 매출로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그가 든 데이터 라벨링 기업의 사례에서는 데이터 확보 비용 때문에 마진이 15~20%에 머물렀다. 반면 일부 투자 기업에서는 매출이 급증하는 동시에 마진이 마이너스 15%에서 플러스 35%로 개선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성장률과 함께 그 매출을 만드는 비용과 지속성을 봐야 한다고 봤다.
시장 규모를 판단할 때도 같은 구분이 필요하다. 법률회사의 소프트웨어 지출만 보면 AI 서비스의 잠재 시장은 작아 보이지만 법률 보조 인력에 쓰는 비용 일부까지 가져올 수 있다면 계산이 달라진다. 다만 출연자는 아직 실제 인력 대체가 시작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현금 대신 연산 자원을 받는 투자
자금 수요의 상당 부분은 AI 학습과 서비스 운영에 필요한 연산 자원에서 나온다. 일부 벤처투자사는 현금 대신 연산 자원을 제공하고 있다. 어차피 투자금을 연산 비용으로 쓸 창업자에게는 자원을 직접 확보해 주는 제안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거래 구조는 단순하지 않다. 자원을 적절한 가격에 확보해야 하고 제공 범위가 한 번의 모델 학습인지 더 긴 기간의 사용권인지 정해야 한다. 같은 자원을 얼마나 재사용할 수 있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가 얼마나 떨어지는지도 따져야 한다.
출연자는 특정 지출이 추가 매출로 이어진다는 근거를 바탕으로 성장 비용을 빌려주는 금융상품도 언급했다. 새로운 조달 방식이 널리 쓰이려면 설명과 설득이 필요하다. 창업자와 투자사는 복잡한 약정 때문에 기업이 곤란해질 수 있는 구조보다 무엇을 받고 얼마의 지분을 내줬는지 분명한 거래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연산 수요를 제한하는 것은 자본일 수 있다
출연자는 투자 기업의 연산 자원을 구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대형 AI 연산 인프라 업체는 2억 달러 미만 규모의 거래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 작은 기업들은 여러 곳에서 용량을 나눠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새로 등장한 AI 모델 연구기업들은 특히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그가 만난 한 기업은 두 번째 투자 유치에서 10억 달러를 모으고 있었고 이 돈 전부를 다음 해 한 차례의 모델 학습에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같은 해 추가로 약 50억 달러를 조달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기업은 성과를 평가하기도 어렵다. 공개한 모델이 폭넓은 용도에서 뛰어난지, 특정 성능 평가 시험에 맞춰 조정됐는지 구분해야 한다. 시험 점수가 높다는 사실만으로 가까운 시일 내 사업화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출연자는 이 기업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곳이 필요한 후속 자금을 계속 구할 수 있을지를 중요한 변수로 봤다.
연산 인프라 공급 쪽에서는 부채 조건이 더 직접적인 제약이 될 수 있다. 그는 일부 사업자가 확보한 자기자본의 5~10배를 넘는 부채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자금을 빌릴 수 있느냐뿐 아니라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금리와 조건으로 빌릴 수 있느냐가 연산 공급의 지속성을 좌우할 수 있다고 봤다.
모두가 아는 기회일수록 가격은 불안정해진다
기업가치가 커질 수 있다는 기대는 초기 투자 가격에도 반영된다. 출연자는 과거에 드물게 등장한 초대형 성공 사례가 어느 순간 모든 기업의 잠재적 결말처럼 취급된다고 지적했다. 가능한 최대 성과가 커지면 높은 진입 가격도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 그 규모에 도달할 기업의 수는 별개다.
그는 지금은 시장을 잘 아는 투자자도 거래 가격을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같은 기업에 제시되는 가치가 네 배까지 벌어질 수 있고 한 투자자가 차순위 제안의 세 배를 지불하기도 한다. 그렇게 성사된 가격은 다른 창업자의 기대 가격을 다시 끌어올린다.
그는 뛰어난 창업자가 일하지만 아직 투자자 다수가 관심을 두지 않는 시장을 찾는 접근을 선호한다. Abstract가 투자한 Conduit은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BCI 분야에서 머리에 착용하는 장치를 개발하고 있었다. 출연자에 따르면 투자 당시에는 분야에 대한 관심이 낮았지만 이후 관심이 커지면서 후속 투자 때 13개의 투자 조건 제안을 받았다.
다만 제안이 적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투자 기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출연자도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업은 대개 실제로 매력이 부족하다고 인정했다. 예외를 찾으려면 창업자가 왜 그 시장에 오랜 시간을 걸기로 했는지 이해해야 한다.
데이터 판매도 서로 다른 사업을 품고 있다
AI 데이터 기업에서도 성장 숫자 뒤의 사업 구상을 구분해야 한다. 출연자는 모델 개발사가 필요한 데이터를 모두 확보하면 판매가 끝날 것이라는 과거 예상과 달리 자신이 보기에는 데이터 수요가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필요한 데이터의 종류와 품질을 먼저 파악하고 확보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고 봤다.
그는 로봇용 데이터 판매 기업을 두 부류로 나눴다. 한쪽은 데이터 자체가 장기간 지속할 거대한 사업이라고 본다. 다른 쪽은 판매 규모에 한계가 있다고 보면서도 다른 모델 개발사에 데이터를 팔아 자체 로봇 모델 연구비를 마련하려 한다. 같은 매출이라도 장기적인 데이터 공급 사업인지, 자체 기술 개발을 위한 자금원인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출연자는 자신의 벤처투자 경험을 기준으로 현재의 투자 기회를 10점, 과열 정도를 6.5~7점으로 평가했다. 실제 제품의 성장에 대한 기대와 자금 공급의 압박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봤다. 투자 제안, 장부상 기업가치, 빠른 매출 성장만으로는 기업과 펀드가 다음 단계에 필요한 현금을 확보했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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