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박스그룹은 일정 지분 확보를 투자 조건으로 삼지 않는다. 대형 벤처캐피털과 대표 투자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기보다 좋은 회사에 참여할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 티시는 기업의 최종 가치가 커지고 후속 투자 때 지분이 덜 희석되면 작은 초기 지분으로도 큰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높은 가격으로만 포트폴리오를 채우는 것은 경계한다.
- AI 시대의 창업자를 평가할 때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능력보다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 대응하는 실행력을 중시한다. 유망한 회사도 성장과 자금 조달 과정에서 오랫동안 외면받을 수 있다.
- 후속 투자 기회는 계약뿐 아니라 창업자와의 관계에서 얻는다. 박스그룹은 펀드 규모가 커져도 사업을 시작하는 창업자에게 투자한다는 중심을 유지하려 한다.
높은 지분율보다 좋은 회사에 참여할 가능성
20VC 진행자 해리 스테빙스는 초기 투자사 박스그룹의 데이비드 티시와 만나 대형 벤처캐피털의 영향력이 커진 시장에서 초기 투자사가 어떻게 경쟁할 수 있는지 논의했다. 대화는 좋은 회사의 큰 지분을 확보하는 것과, 좋은 회사에 투자할 기회를 확보하는 것 중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스테빙스는 과거 박스그룹의 낮은 지분율과 폭넓은 분산 투자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 인정했다. 기업이 도달할 수 있는 최종 가치가 커지면서 작은 투자금과 지분으로도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티시는 벤처투자를 소수의 예외적인 성공이 전체 수익을 좌우하는 사업으로 본다. 그런 회사의 시드 단계에서 지분 10~20%를 확보하려면 먼저 회사를 찾아내고 성공 가능성을 판단한 뒤 세계적인 투자사들과 경쟁해 창업자의 선택까지 받아야 한다. 그는 오랜 기간 명성과 관계를 쌓아온 대형 투자사들이 이제 초기 투자에도 더 집중하며 효율적으로 움직인다고 평가했다.
높은 지분율을 요구하면 투자하고 싶은 회사와 실제 포트폴리오에 담기는 회사가 달라질 수 있다. 티시는 집중 투자사들이 원하는 거래의 90%를 따낸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20%에 가까울 수 있다고 추정했다. 지분 10%씩 30개 회사에 투자하려면 120~150개 회사에 제안해야 할 수도 있다고 봤다.
작은 지분의 수익성을 바꾸는 두 조건
티시는 비싸진 초기 투자 가격을 판단할 때 두 가지 변화를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는 기업이 도달할 수 있는 최종 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후속 투자에 따른 지분 희석이다. 희석은 새 주식을 발행하면서 기존 주주의 지분율이 낮아지는 것을 뜻한다.
그는 과거에는 기업가치 100억 달러를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초기 회사를 평가할 때 그 정도 규모까지 성장할 가능성을 검토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빠르게 성장하는 일부 회사는 후속 라운드에서 과거의 12~20% 대신 3~8% 수준의 희석으로 자금을 조달한다고 설명했다. 여러 차례 투자에서 이 차이가 쌓이면 초기 지분이 더 많이 남는다.
다만 모든 회사가 이런 경로를 밟는다는 뜻은 아니다. 티시는 좋은 회사도 가치 하락이나 성장의 굴곡을 겪으며 박스그룹의 포트폴리오 전체가 투자 전 기업가치 2억 달러에 2,000만 달러를 조달하는 시드 투자로 채워진다면 사업의 경제성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개별 거래에서 지분율을 고집하지 않더라도, 포트폴리오 전체의 진입 가격은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봤다.
박스그룹은 현재 2억7,500만 달러 규모의 시드 펀드에서 약 150개 회사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초 투자 지분은 1%인 경우도, 10%인 경우도 있다. 티시는 시장 상황에 따라 원하는 투자에 참여하는 비율이 약 70~90%라고 설명하며 가장 큰 장애물로 회사를 너무 늦게 발견하는 것과 의사결정 속도를 꼽았다.
많은 자금과 느슨한 운영은 같은 말이 아니다
자금이 몰리는 회사에서는 사업에 큰 변화가 없는데도 곧바로 더 높은 가격의 다음 투자가 진행되기도 한다. 스테빙스는 너무 많은 돈을 너무 빨리 받은 창업자가 집중력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티시는 그런 일이 생길 수는 있지만 모든 창업자에게 같은 위험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더 많은 자금과 높은 기업가치는 운영할 시간을 늘리고 인재 채용과 초기 고객 확보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는 창업자가 자신이 선택한 자금 규모와 조건에 맞춰 회사를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적은 자원으로 실험하며 사업을 만드는 린 스타트업 접근을 강하게 비판했다. 다만 스테빙스가 외부 투자 없이 성장하는 기업을 반례로 들자 그런 기업의 존재는 인정했다. 티시는 벤처투자를 받아 크게 성장하려는 회사에 초점을 맞춰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는 것과 운영 규율을 잃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티시는 자신도 더 낮은 가격에 투자하고 싶다고 말했다. 원하는 조건을 얻지 못했을 때의 불만과 그 회사에 투자할지를 결정하는 사업적 판단은 구분해야 한다고 봤다.
AI 시대에는 예측보다 대응 능력을 본다
티시는 현재 시장을 단순히 2021년의 반복으로 보지 않는다. 새 모델 공개, 특정 산업의 AI 기업 성장, 대형 인수합병 같은 사건이 두세 달 간격으로 시장 분위기를 바꾼다고 설명했다. 모든 회사가 최첨단 모델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며 AI 도입 속도와 영향도 회사마다 다르다.
이런 환경에서 그는 미래를 확신하는 창업자보다 빠르고 복잡하게 바뀌는 조건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는 창업자를 찾는다. 초기 신호로는 뛰어난 인재를 빠르게 영입하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고객을 확보하는 능력을 들었다. 제품과 판매 과정에서 예상보다 앞서 나가는 모습을 살핀다고 말했다.
현재 기술 역량이 강한 창업자가 두드러진다고 해서 당장의 수요만 따라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티시는 만약 2년 뒤 영업과 시장 진입 역량이 다시 차별점이 된다고 판단한다면 그런 역량을 가진 사람에게 지금 투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초기 투자는 제품과 회사가 본격적으로 성장할 몇 년 뒤를 겨냥하기 때문이다.
좋은 회사도 한동안 외면받을 수 있다
티시는 금융 분야 AI 기업 로고(Rogo)를 시장의 평가가 바뀐 사례로 들었다. 박스그룹은 가장 이른 투자에 참여했고 이후 티시는 시리즈 A 조달을 도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약 40곳의 대표 투자자 후보 중 39곳이 투자를 거절했다. 하지만 회사는 계속 제품을 만들고 성과를 쌓았으며 이후에는 여러 투자사가 인정하는 회사가 됐다.
성장 속도도 회사마다 다르다. 티시는 초기 투자한 클레이(Clay)가 약 4년간 굴곡을 겪은 뒤 빠르게 성장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는 학습과 반복, 고객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의 개발이 필요했다. 베이스텐(Base 10)도 AI 모델을 실제로 실행하는 추론 시장이 형성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투자하지 않기로 한 분야도 있다. 박스그룹은 소비자 브랜드에 대한 시드 투자를 중단했다. 티시는 브랜드가 작아서가 아니라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반응, 실제 구매, 고객 확보 비용과 고객이 장기간 가져오는 가치의 관계를 시드 단계에서는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같은 브랜드라도 이런 데이터가 생긴 시리즈 A 단계의 투자는 흥미로울 수 있다고 봤다.
후속 투자 기회는 관계에서도 얻는다
박스그룹은 시드 펀드와 별도로 같은 규모인 2억7,500만 달러의 후속 투자 펀드를 운영한다. 주로 기존 포트폴리오에서 20~30개 회사에 500만~3,000만 달러를 추가 투자한다. 처음에는 넓게 투자하고 이후 일부 회사에 더 큰 금액을 투입하는 구조다.
티시는 후속 투자에서 기존 지분율을 유지하도록 참여하는 권리인 프로라타를 계약에 넣는 것이 유용하다고 본다. 다음 투자사가 큰 지분을 요구할 때 기존 투자자의 권리가 창업자의 협상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약만으로 다음 투자 기회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창업자가 투자자에게 물러나 달라고 요청했을 때 권리만 고집하면 관계와 평판을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초기 지분을 매각하는 데도 신중하다. 그는 좋은 회사가 후반부에 더 큰 가치를 쌓을 수 있고 조기 매각이 창업자와의 관계를 해칠 수 있다고 봤다. 창업자나 직원이 일부 지분을 파는 경우와도 구분했다. 개인의 부채나 생활 부담을 줄이면 창업자가 더 큰 위험을 감수하며 사업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직원에게 현금화 기회를 제공하면 장기 근속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펀드가 커져도 무엇을 유지할 것인가
티시는 신생 투자사를 만나면 첫 펀드보다 네 번째 펀드가 어떤 모습일지 묻는다. 규모가 커지고 파트너가 늘어나면 투자 단계, 투자금, 집중도까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장기적인 목표를 알아야 한다고 봤다.
박스그룹도 규모는 커졌지만 창업자가 사업을 구상하는 가장 이른 단계에 투자한다는 중심은 유지하려 한다. 내부 투자 결정에서도 실패할 이유를 나열하는 것보다 성공할 가능성을 찾는 데 무게를 둔다. 창업자를 직접 만나지 않은 구성원이 다른 동료의 투자에 부정적인 평가를 던지는 것을 제한한다. 다만 창업자의 윤리나 평판에 관한 정보는 공유해야 할 중요한 예외로 뒀다.
티시의 전략에서 일관된 기준은 정해진 지분율이나 조직 규모가 아니다. 초기 창업자를 더 일찍 만나고 좋은 회사에 투자할 기회를 확보하며 그 회사가 성장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박스그룹은 대형 투자사와 같은 조건으로 경쟁하는 대신 자신이 계속 수행할 역할을 분명히 하는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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