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은 1987년 투자자 네 명에게서 500만 달러를 모아 칼라일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큰 펀드를 조성할 자금이 없어 거래마다 투자금을 모집했다.
  • 그는 투자 판단에 강한 동료들에게 거래 평가를 맡기고, 자신은 자금 조달과 인재 영입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 칼라일은 투자 분야와 지역을 넓혀 여러 펀드를 운영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을 영입하고 자금을 모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 루벤스타인은 아마존 초기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하지 못하고 보유 지분마저 기업공개 때 판 일을 아쉬워했다.
  • 그는 미국 연방 부채를 우려하며 달러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인터뷰에서 밝힌 그의 판단이다.

37세에 시작한 투자회사

루벤스타인은 카터 행정부의 백악관에서 일한 뒤 법률 업무를 맡았지만, 변호사 일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는 창업을 결심했을 때 37세였다. 창업자가 첫 회사를 시작하는 나이에 관한 글을 읽고, 당시가 자신에게는 실행할 시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87년 그는 투자자 네 명에게서 500만 달러를 모았다. 인터뷰 당시 칼라일의 운용 자산은 5,000억 달러라고 설명했지만, 출발점에는 큰 펀드를 만들 자금이 없었다. 초기에는 투자할 거래를 먼저 찾고 그 거래에 필요한 돈을 모으는 방식을 여러 해 이어갔다. 이후 처음 조성한 펀드는 1억 달러, 두 번째 펀드는 10억 달러 규모였다고 밝혔다.

거래별 자금 조달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투자자가 결정을 미루면 거래를 진행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루벤스타인은 당시 상장 주식을 매입하려 했기 때문에 투자 기회를 설명할 때도 조심스러웠다고 회상했다. 한때는 파산 절차에 있는 회사를 인수하려고 보유 현금을 거의 다 쓴 뒤 법원에서 인수에 실패해 급여 지급을 걱정하기도 했다. 그는 결국 그 회사를 인수했고, 성공적인 거래가 됐다고 말했다.

동료의 투자 역량과 자신의 역할을 나누다

초기 동료 중에는 장거리 전화회사 MCI의 최고재무책임자였던 빌 콘웨이가 있었다. 콘웨이는 이후 약 30년간 루벤스타인과 함께 공동 최고경영자를 맡았다. 칼라일은 메리어트의 고위 임원 출신도 영입했다.

루벤스타인은 동료들이 경영학 석사 학위를 갖고 투자 세계를 자신보다 잘 알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거래 평가를 그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투자금 모집과 인재 영입, 회사의 대외 활동을 담당했다. 워싱턴에 자리한 신생 투자회사라는 약점을 설명할 때는 연방정부의 영향을 크게 받는 기업을 뉴욕의 투자회사보다 잘 이해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는 그 주장이 사실이었는지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일부 투자자를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인정했다.

칼라일은 기업 인수 펀드에 더해 성장·부동산·부채 펀드를 만들고 유럽과 아시아, 일본 등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루벤스타인은 이런 확장을 위해 세계 각지를 다니며 사람을 영입하고 자금을 모았다고 말했다. 전직 미국 국방장관과 국무장관 등을 영입한 일도 회사가 새로운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한 번의 성공적인 거래 기록을 쌓아야 다음 거래를 설득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실수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아마존 초기 제안을 놓친 과정

루벤스타인은 칼라일이 보유한 한 회사의 도서 목록을 빌리려던 제프 베이조스와의 일을 떠올렸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베이조스는 처음에 자신이 만들 회사의 지분 20%를 제안했다. 당시 칼라일 측은 유동성이 낮은 신생 기업 지분보다 현금을 원했고, 루벤스타인의 기억으로는 연간 약 10만 달러를 5년간 받는 계약을 맺었다.

몇 년 뒤 루벤스타인은 베이조스를 만나 지분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때는 회사가 성장해 베이조스에게 초기와 같은 조건을 제안할 이유가 줄어든 상태였다. 칼라일은 일부 지분을 받았지만 기업공개 때 팔았다. 루벤스타인은 이를 잘못된 결정으로 평가하며, 그 지분을 계속 보유했다면 인터뷰 당시 약 140억 달러의 가치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베이조스에게 뛰어난 추진력과 자신감이 있었다고 회상하면서도,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초기 성장에도 운이 작용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사람이나 기업의 성공을 초기에 확실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성장 뒤에도 이어진 불안

루벤스타인은 사업 10년 차에도 회사가 안전해졌다고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음 거래의 실패나 구성원의 잘못된 행동을 계속 걱정했고, 인터뷰 당시에도 매일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생각한다고 했다. 자신감이 필요하지만 잘못될 수 있는 일을 예상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창업 경험이었다.

초기 사무실을 구할 때는 추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무료 선택권도 거절했다. 회사를 너무 빨리 키우고 싶어질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공간을 넓혀야 했지만, 창업 당시에는 성장 속도를 경계했다고 회상했다.

연방 부채에 대한 달러 전망

대담 후반 루벤스타인은 미국 연방 부채도 자신의 걱정거리로 들었다. 그는 부채가 40조 달러에 이른다고 말하며, 이를 갚을 능력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가치가 낮아진 달러로 갚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달러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발언은 이 부채 전망에 근거한 그의 예상이지, 이미 일어난 결과를 설명한 것은 아니다.

루벤스타인의 이야기는 칼라일의 성장이 한 번의 자금 조달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초기에는 거래마다 돈을 모으고 사람을 영입했으며, 성장한 뒤에도 놓친 기회와 실패 가능성을 계속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