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데이비드 라이히 연구팀은 유럽·중동의 고대인 약 1만 6,000명과 현대인을 포함한 자료에서 지난 1만 8,000년의 유전적 변화를 분석했다.
- 유전자 변이 빈도 변화의 대부분은 이주와 집단 혼합 등으로 설명됐다. 연구팀은 그 영향을 분리한 뒤에도 여러 위치에서 자연선택의 신호를 찾았다고 밝혔다.
- 면역과 대사 관련 선택은 특히 청동기 시대 이후 강해졌다. 라이히는 농경의 시작보다 이후의 인구 밀집과 생활 방식 변화가 더 큰 생물학적 압력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 농경이 여러 지역에서 비교적 늦게 나타난 이유와 네안데르탈인의 계통 관계에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주가 만든 변화와 자연선택을 구분하다
한 사람의 DNA만으로도 조상의 이동과 혼합은 상당 부분 추적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유전자 변이가 세대를 거치며 얼마나 자주 나타났는지 알아보려면 많은 사람의 자료가 필요하다. 라이히 연구팀은 새로 확보한 약 1만 명을 포함해 고대인 약 1만 6,000명의 자료를 모았다. 현대인까지 포함한 분석 대상은 약 2만 2,000명으로, 지역은 유럽과 중동에 한정된다.
연구팀은 약 1,000만 개의 유전자 위치에서 나타난 변화를 살폈다. 우선 사람들 사이의 유전적 연관성으로 이주, 집단 혼합, 우연에 따른 변화를 설명한 뒤, 특정 변이가 여러 시기와 지역에서 일관되게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검토했다. 라이히에 따르면 관찰된 빈도 변화의 약 98%는 자연선택 이외의 요인, 특히 이주와 집단 구조의 영향을 받았다. 약 4,500년 전 유럽에서 흑해·카스피해 북쪽 초원 목축민의 이동으로 유전적 구성이 크게 바뀐 사례도 있다. 그런 급격한 변화를 곧바로 자연선택으로 읽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서로 독립적인 위치 최소 479곳에서 높은 확신도의 선택 신호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신호가 잡힌 모든 위치가 실제로 선택을 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라이히는 약 7,200개 위치에 각각 50% 수준의 신뢰도를 부여할 수 있으며, 그중 실제 신호는 약 절반으로 추정한다고 구분했다.
농경의 시작보다 청동기 시대에 강해진 압력
선택 신호는 면역 관련 형질에서 특히 많이 나타났고 대사 관련 형질에서도 두드러졌다. 라이히는 지난 5,000년의 면역·대사 관련 선택이 그 이전 5,000년보다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중동에서 시작된 농경이 유럽으로 퍼진 것은 약 8,500년 전부터였지만, 여러 유전적 변화가 강해진 시점은 그보다 뒤인 약 5,000~2,000년 전과 겹친다.
라이히는 청동기 시대에 인구 밀도가 높아지고 사람이 가축 및 다른 사람과 더 가까이 살면서 질병에 노출되는 방식도 바뀌었다고 봤다. 다만 이런 생활 변화가 각각의 유전적 변화를 일으켰다는 인과관계가 모두 확인된 것은 아니다. 결핵 중증 위험과 관련된 TYK2 변이는 앞선 시기에 빈도가 높아졌다가 최근 약 3,000년 동안 낮아졌다. 라이히는 결핵의 확산이 방향 전환과 관련됐을 가능성을 제시하면서도, 이전에 그 변이가 어떤 이점을 줬는지는 추측이라고 밝혔다.
현대의 형질로 과거를 읽을 때의 한계
연구팀은 지난 1만 년 동안 비만, 체지방, 제2형 당뇨병 위험과 연관된 유전적 조합이 줄어드는 선택 신호도 관찰했다. 라이히는 수렵채집과 농경의 식량 사정 차이를 가능한 설명으로 들었지만, 농경 사회의 기근과 사냥 사이의 짧은 식량 공백은 서로 다른 시간 규모의 문제라고 짚었다.
행동·정신 관련 형질에서는 강한 선택 신호가 면역 형질만큼 뚜렷하지 않았다. 라이히는 이것이 선택이 없었다는 증거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행동 형질에는 효과가 작은 유전자가 매우 많이 관여해 개별 신호를 포착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연구팀은 오늘날 교육 연수나 인지 검사 성적을 예측하는 유전적 조합과 관련된 선택 신호도 분석했다. 일부 신호는 청동기 시대에 강했고 최근 2,000년에는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인의 검사·교육 자료로 만든 예측값은 고대인의 지능이나 학업 성취를 직접 측정한 값이 아니다. 교육 연수의 유전적 예측값은 첫 출산 연령, 체질량지수 등 다른 형질과도 연관된다. 라이히 역시 실제로 어떤 형질이 선택을 받았는지는 확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농경은 왜 훨씬 일찍 시작되지 않았나
대담은 유전적 능력이 갖춰져 있었다면 농경이 왜 더 일찍 나타나지 않았는지도 다뤘다. 라이히는 오늘날 사람들의 공통 조상 집단이 여러 지역으로 퍼진 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서로 다른 곳에서 농경이 나타났다는 점을 수수께끼로 봤다.
그가 제시한 한 가지 설명은 약 1만 2,000년 전 이후의 상대적인 기후 안정성이다. 그는 전문가들에게 들은 설명을 소개하며, 기온이 해마다 또는 수십 년마다 덜 흔들리는 조건이 농경에 중요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지역마다 환경과 작물이 다른 곳에서 농경이 나타난 사실까지 이 설명만으로 풀 수 있다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네안데르탈인의 계보에 관한 미완성 가설
전체 유전체를 비교하면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보다 데니소바인과 더 가까운 계통으로 나타난다. 반면 라이히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와 Y염색체에는 현생인류 계통과의 오래된 혼합 흔적이 있다. 그는 약 20만~30만 년 전 현생인류로 이어지는 계통이 네안데르탈인 조상에게 DNA를 전달한 사건에 주목했다.
라이히가 검토 중인 가설은 당시 확산한 집단이 유럽의 기존 인류와 섞이면서 유전체의 대부분은 현지 계통으로 바뀌었지만, 석기 제작 방식 같은 문화는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이 구상이 유전체 전체와 일부 유전 계통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관계를 함께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동시에 확산 과정에서 미토콘드리아 DNA와 Y염색체가 모두 유지된 이유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며, 가설 자체가 틀렸을 가능성도 인정했다.
고대 DNA는 과거의 이주와 자연선택을 더 세밀하게 구분할 자료를 제공한다. 이번 대담에서 라이히는 청동기 시대의 강한 선택 신호를 제시하는 한편, 농경의 시점과 네안데르탈인의 형성 과정은 여전히 열린 문제로 남겨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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