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역사가 에이다 파머에 따르면, 고전 문헌을 모으려던 초기 인문주의자들의 목표는 더 나은 통치자를 기르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쌓인 도서관과 독서 문화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쓰였다.
  • 피렌체는 상인 길드가 권력을 나누는 공화국이었다. 그러나 메디치 가문은 금융력과 인맥을 바탕으로 그 제도를 장악했다.
  •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책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게 했지만, 흩어져 있는 구매자에게 책을 보내는 유통망이 갖춰지기까지 인쇄업은 수익을 내기 어려웠다.
  • 파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공개 작업 방식과 프랜시스 베이컨이 제안한 지식 공유를 대비한다. 발견을 공개하고 다른 사람이 검증할 수 있게 하는 일이 과학의 중요한 변화였다는 설명이다.

로마를 되살리려다 다른 세계를 열다

파머의 설명에서 르네상스의 출발점은 과학 혁명이 아니었다. 흑사병과 전쟁을 겪은 페트라르카는 이탈리아의 지도자들이 공익보다 가문의 권력과 명예를 앞세운다고 보았다. 그는 고대 로마의 인물들을 길러낸 문헌과 교육을 되살리면 더 나은 통치자를 만들 수 있다고 기대했다. 후계자들은 필사본을 찾아 모으고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칠 사람을 길렀다.

하지만 고전을 읽은 지도자들이 기대한 덕목을 실천한 것은 아니었다. 파머는 고전 교육을 받은 체사레 보르자와 전쟁에서 나라를 잃은 통치자의 사례를 대비한다. 마키아벨리는 훌륭한 인물에 관한 글을 읽는 것만으로 훌륭한 통치자가 된다는 생각에 의문을 품었다. 대신 역사 속 결정을 나란히 놓고 무엇이 효과가 있었는지 살피려 했다.

파머는 이 과정이 한 세대에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도서관을 만들고, 책에 접근하는 사람이 늘고, 문헌을 다른 방식으로 읽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더 많은 사람이 같은 자료를 읽게 되자 서로 다른 질문과 검증도 가능해졌다. 다만 그는 이를 과학 혁명의 유일한 원인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책뿐 아니라 정보를 주고받는 연결망, 길드와 같은 조직의 변화도 함께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상인의 공화국 피렌체와 메디치 가문

피렌체의 공화국은 주변 도시들과 달리 귀족 대신 상인 길드의 구성원이 통치에 참여하는 구조였다. 여기서 길드 구성원은 직물 작업자보다는 작업장과 창고를 소유한 상인을 뜻했다. 자격을 갖춘 사람 가운데 추첨으로 뽑힌 아홉 명이 짧은 임기 동안 도시를 다스렸다. 파머는 이 제도가 권력 집중을 막으려는 장치였지만, 오늘날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설명한다.

상인은 사업을 통해 여러 지역과 연결돼 있었고, 고용인에게 생계 지원과 법적 도움을 제공하는 후원 관계의 중심이기도 했다.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는 교황청으로 흘러가는 돈을 거두고 전달하는 은행 업무를 맡으며 자금과 인맥을 확보했다. 파머에 따르면 그는 자신과 연결된 사람들이 추첨 대상에 많이 포함된다는 점을 이용해 공화국의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후에는 선출 절차에도 개입했다.

메디치 가문이 권력을 장악한 뒤에도 공화국의 직책과 관습은 남았다. 파머는 피렌체 사람들이 그 제도에 강한 애착을 지녔기 때문에 새 통치자도 이를 완전히 무시하기 어려웠다고 본다. 공화국이 무너졌다는 사실과, 그 제도에 대한 지지가 이후 통치자의 행동을 제약했다는 사실을 함께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쓴 이유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서 쫓겨난 동안 공화국 정부에서 일했다. 메디치 가문이 돌아온 뒤 그는 체포와 고문을 당하고 추방됐다. 그가 『군주론』을 추방한 가문에 바친 일을 두고, 파머는 권력을 얻으려는 계산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파머의 해석에 따르면 마키아벨리는 어느 정권이 피렌체를 다스리든 고향을 위해 일하기를 원했고, 이 책도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제한적으로 돌렸다.

파머는 그가 내전을 겪으며 정권 교체가 낳을 유혈 사태를 두려워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군주론』의 가혹한 권력 유지 방안을 모든 목적을 위한 일반 원칙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마키아벨리가 우선한 목적은 국가의 생존이었다.

인쇄기는 있었지만 책을 팔 길은 없었다

인쇄술은 한 권을 필사하는 비용으로 여러 권을 만들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책을 읽을 사람이 인쇄소가 있는 도시에 모여 있지는 않았다. 파머는 구텐베르크가 파산한 까닭을 대량 생산과 유통망 사이의 간극에서 찾는다. 인쇄업자는 종이와 제작비를 먼저 부담해야 했고, 완성한 책을 팔 곳을 찾아야 했다. 그의 제자들 역시 빚을 지고 독일을 떠났다.

파머에 따르면 베네치아의 항로와 뒤이어 형성된 도서 박람회가 이 문제를 풀었다. 여러 도시로 향하는 선박에 책을 나눠 싣고, 박람회에서는 인쇄업자들이 서로 책을 교환했다. 한 도시의 인쇄소가 같은 책만 쌓아두는 대신 여러 책을 조금씩 가져와 팔 수 있게 된 것이다. 파머는 인쇄술이 등장한 뒤 인쇄업이 수익을 내기까지도 수십 년이 걸렸다고 설명한다.

인쇄물의 형태도 차례로 달라졌다. 짧은 팸플릿은 긴 책을 제작하는 동안 빠르게 인쇄해 팔 수 있는 상품이었다. 이후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신문은 익명의 팸플릿과 달리 발행자의 평판을 걸고 소식을 전했다. 파머는 서로 엇갈리는 신문 보도를 비교하는 잡지도 등장했다고 말한다. 하나의 인쇄 기술이 보급되면서 유통, 뉴스, 신뢰 문제에 대응하는 여러 형식이 생겨난 셈이다.

책의 보급에는 종이도 중요했다. 파머는 서유럽이 값싼 파피루스를 쓰기 어려워진 뒤 동물 가죽으로 만든 값비싼 양피지에 크게 의존했다고 설명한다. 종이가 들어온 후에도 사람들은 오래 보존할 문서에 종이를 쓰는 데 신중했다. 그가 강조하는 변화는 한순간의 발명이 아니라 생산 비용, 재료에 대한 신뢰, 유통망이 함께 달라지는 과정이다.

비밀로 간직한 발명과 공유하는 과학

파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과학자로 부르지 않는다는 도발적인 표현을 쓴다. 그의 기준에서 과학자는 발견을 공개해 다른 사람이 시험하고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사람이다. 파머의 설명에 따르면 다빈치는 작업의 비법을 감춰 독보적인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만든 브루넬레스키도 다른 사람이 재현하지 못하도록 기록을 불태웠다는 사례를 든다.

이에 비해 베이컨이 제안한 방식은 자연을 관찰하고, 얻은 정보를 가공해 유용한 지식을 만들며, 그 결과를 공유하는 것이었다. 파머는 지식을 모아두기만 하는 사람과 머릿속 이론만 짜는 사람에 대비해, 베이컨이 관찰한 것을 쓸모 있게 바꾸는 사람을 벌에 비유했다고 설명한다. 이 대담에서 중요한 구분은 발명의 유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발견을 검증하고 활용할 수 있는가에 있다.

결론

파머가 그리는 르네상스는 고전의 재발견이나 인쇄기의 발명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피렌체의 정치, 도서관의 축적, 책의 유통, 발견을 공유하는 관행이 긴 시간에 걸쳐 서로 영향을 주었다. 처음 그 변화를 추진한 사람들이 바라던 결과와 실제로 나타난 결과도 같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