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홈디포는 1979년 애틀랜타에서 두 매장을 열었다. 창고를 판매 공간으로 쓰고 제조사에서 직접 상품을 받아 가격을 낮추는 구상이 출발점이었다.
  • 창업팀은 폭넓은 상품 구색에 숙련된 직원의 작업 안내를 결합했다. 고객이 한곳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사용법도 배울 수 있게 한 것이다.
  • 빠른 확장 뒤에는 비용 절감으로 고객 서비스가 약해진 시기가 있었다. 이후 회사는 신규 매장 확대를 멈추고 기존 매장과 물류망에 투자했다.
  • 진행자들은 홈디포의 성장을 창고형 매장 자체뿐 아니라 미국 주택의 노후화, DIY 수요, 전문 시공업자 시장, 규모의 경제가 맞물린 결과로 해석한다.

해고 뒤 시작된 창고형 매장 구상

버니 마커스와 아서 블랭크는 철물점 체인 핸디 댄을 운영하다 1978년 해고됐다. 두 사람은 투자은행가 켄 랭곤과 함께 새 회사를 준비했다. 마커스가 주목한 모델은 솔 프라이스의 프라이스 클럽이었다. 별도 창고에 물건을 쌓아두는 대신 고객이 창고 안에서 직접 쇼핑하고, 제조사에서 상품을 받아 중간 유통 비용을 줄이는 방식이었다.

다만 주택 개보수에는 다른 조건이 필요했다. 고객이 목재, 공구, 배관 자재를 사러 여러 가게를 돌지 않으려면 상품 종류가 많아야 했다. 원문에 따르면 창업팀은 당시 핸디 댄의 약 8,000개보다 많은 약 2만5,000개 품목과 약 6만 제곱피트 규모의 매장을 구상했다. 상품 사용법을 알려줄 직원도 필요했다. 창업팀은 기존 창고형 주택 개보수점 홈코를 인수하려는 의향서까지 맺었지만, 실사에서 공급업체 미지급금 등 재무 문제가 드러나 인수하지 않았다. 대신 홈코 운영자 팻 패러를 상품 기획 담당 공동창업자로 합류시켰다.

적은 자본으로 만든 가격과 구색

랭곤은 여러 투자자에게서 초기 자금 200만 달러를 모았다. 자본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홈디포는 공급업체에 지급하기 전에 상품을 팔아 현금을 확보해야 했다. 초기에는 고객에게 외상 거래를 제공하기 어려워 현금이나 카드로 곧바로 결제하는 소비자 판매에 집중했다. 원문은 상품이 팔리는 속도와 지급 조건 덕분에 재고의 상당 부분을 공급업체가 사실상 금융 지원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홈디포는 1979년 6월 애틀랜타에 두 매장을 열었다. 첫해에는 연말에 세 번째 매장도 열어 약 6개월 동안 총매출 7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방송에서 인용한 조사에 따르면 초기 가격은 경쟁점보다 10~25% 낮았다. 상품당 이익률을 낮추더라도 한곳에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게 해 판매량을 늘리고, 더 큰 주문을 바탕으로 공급업체에서 낮은 가격을 받는 순환을 노렸다. 다만 많은 품목과 직원을 유지하려면 실제로 상품이 빠르게 팔려야 하는 부담도 있었다.

전문 직원이 만든 서비스와 반복 구매

창업팀은 배관공, 전기공, 목수 등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매장 직원으로 채용했다. 직원이 고객에게 자재를 찾아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작업 방법까지 설명하도록 했다. 방송 진행자들은 인터넷 영상이 없던 시기에 이런 안내가 소비자의 직접 수리·개보수, 즉 DIY 참여를 넓혔다고 평가한다.

전문 시공업자도 중요한 고객이 됐다. 홈디포는 이후 사업자 신용 거래, 대량 구매 가격, 현장 배송, 매장 내 전문 고객 창구를 도입했다. 방송이 제시한 2015년 수치에서 일반 DIY 고객은 연평균 약 5회 방문하고 330달러를 쓴 반면, 전문 고객은 약 66회 거래하며 6만5,000달러를 지출했다. 초기 매장 직원에게는 할인된 가격으로 회사 주식을 살 기회도 제공했다. 회사는 고객 응대와 매장 성과가 직원의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관계를 강조했다.

빠른 확장과 서비스 약화

홈디포는 1981년 네 매장 규모에서 상장해 약 400만 달러를 조달했다. 1986년에는 60개 매장으로 매출 10억 달러를 넘었고, 1989년에는 로우스를 제치고 미국 최대 주택 개보수 소매업체가 됐다. 그러나 매장별 자율 운영은 회사가 커지면서 구매 협상과 재고 관리의 효율을 떨어뜨렸다. 로우스도 1990년대부터 대형 매장으로 전환하며 경쟁을 강화했다.

2000년 최고경영자가 된 밥 나델리는 구매와 운영을 중앙화해 일부 비효율을 개선했다. 동시에 방송에 따르면 매장 직원 수는 2000~2006년 매장당 약 200명에서 170명으로 줄었고, 숙련된 직원을 일반 시간제 인력으로 대체하는 방향이 서비스 역량을 약화시켰다. 매장 수 확대에 힘입어 매출과 이익은 늘었지만, 기존 매장 매출은 정체했고 고객 만족도는 하락했다. 진행자들은 전문 지식을 갖춘 직원과 고객 응대라는 홈디포의 강점이 비용 절감 과정에서 훼손됐다고 본다.

매장 확대를 멈추고 물류를 다시 짜다

2007년 최고경영자가 된 프랭크 블레이크는 신규 매장 확장을 사실상 멈추고 기존 매장의 생산성에 집중했다. 방송에 따르면 매장 수는 2008년 약 2,300개에서 방송 시점 약 2,400개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동안 회사는 배송 거점과 온라인 주문 체계에 투자했다. 2009년에는 제조사에서 온 상품을 매장으로 보내는 대형 물류센터 12곳을 열었다.

이 변화는 주택 개보수 상품의 구매 상황과 맞닿아 있다. 작업 중 자재가 떨어지면 며칠 뒤 배송보다 가까운 매장에서 바로 받는 편이 유용할 수 있다. 대량의 목재나 건축 자재는 일반 소포와 다른 배송망도 요구한다. 홈디포는 매장 수령, 매장 배송, 물류센터 배송을 함께 운영하게 됐다. 이후 전문 고객용 유통망도 다시 확대했다. 2007년 매각했던 HD 서플라이 사업의 일부를 나중에 재인수했고, 2024년에는 지붕·조경 등 전문 업종에 자재를 공급하는 SRS를 인수했다.

성장 요인과 남은 구분

방송은 미국 주택의 중위 연령이 1980년 무렵 약 23년에서 방송 시점 약 42년으로 높아진 점을 수요의 배경으로 제시한다. 진행자들이 말한 2026년 홈디포의 시장점유율 51%는 주택 개보수 전문점 시장을 기준으로 한 수치다. 더 넓은 주택 개선·수리 지출 전체의 점유율로 읽어서는 안 된다. 진행자들 역시 로우스가 매장 형식과 운영 방식에서 홈디포를 따라오면서 두 회사의 수익성 차이가 크지 않다고 설명한다.

홈디포의 사례에서 이어지는 것은 한 가지 고정된 운영 방식이 아니다. 창업기의 제조사 직송과 지역별 자율 운영은 규모가 커지며 중앙 구매와 물류센터로 바뀌었다. 반면 필요한 상품을 제때 갖추고 고객의 작업을 돕는다는 목적은 매장 서비스에서 주문·수령·배송 체계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