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넷플릭스의 출발점은 DVD의 성공이 확실하다는 믿음이 아니었다. 리드 헤이스팅스는 DVD가 보급되면 우편 대여에 기회가 생기지만, 보급에 실패하면 사업도 끝날 수 있다고 봤다.
- 초기 건별 대여는 재이용이 줄었다. 넷플릭스는 1999년 월 구독과 반납 시 다음 DVD를 보내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 헤이스팅스는 회사를 가족보다 프로 스포츠팀에 가깝게 운영하려 했다. 높은 역량과 협력을 중시하고, 해당 역할에 더 적합한 사람을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하면 넉넉한 퇴직금을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 2011년 DVD와 스트리밍 사업을 급격히 분리하려던 결정은 고객 반발을 불렀다. 이후 넷플릭스는 큰 결정에서 경영진의 반대 의견을 공개적으로 확인하는 절차를 도입했다.
- 헤이스팅스는 자체 콘텐츠 제작보다 여러 나라의 시청자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한 선택을 더 이례적인 전략으로 평가했다.
첫 창업에서 배운 제품과 조직의 문제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 이전에 고객 지원용 AI 소프트웨어를 만들던 스타트업에서 일했다. 그는 많은 코드를 작성했지만, 소프트웨어를 산 고객은 한 곳뿐이었고 그 고객도 제품을 설치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당시 최고경영자에게서는 직원에게 헌신하는 태도를 배웠지만, 훌륭한 사람을 이끄는 일과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고르는 일은 별개의 능력이라고 느꼈다.
이후 세운 퓨어소프트웨어는 디버깅 제품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헤이스팅스는 매출이 매년 두 배로 늘던 시기에도 영업 책임자를 5년 연속 해마다 교체하는 등 조직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실수를 막기 위해 절차를 늘린 결과, 규칙을 따르지 않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하던 사람들을 조직에서 밀어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DVD가 연 우편 대여의 가능성
헤이스팅스와 마크 랜돌프는 함께 출퇴근하며 여러 전자상거래 아이디어를 검토했다. 비디오 대여는 반납과 연체료 등 고객의 불편이 있었지만, 당시 주류였던 VHS 테이프는 우편 배송비가 비쌌다. 헤이스팅스에 따르면 VHS 한 개를 보내고 돌려받는 비용은 약 8달러로, 대여료 3~4달러에 더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1997년 두 사람은 영화가 담긴 작은 디스크인 DVD가 등장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헤이스팅스는 DVD를 구하기 어려워 CD 다섯 장을 여러 봉투에 넣어 자신에게 보내봤고, 모두 손상 없이 도착했다. 다만 배송이 가능하다는 확인과 시장의 성장은 다른 문제였다. 그는 DVD가 널리 보급될지 확신하지 못했고, 초기에 DVD 플레이어를 가진 가구가 적어 넷플릭스가 너무 일찍 시작했다고 돌아봤다.
건별 대여에서 구독으로
1998년 무렵 시작한 넷플릭스의 초기 모델은 월정액이 아니었다. 고객은 DVD 한 장을 일정 기간 빌리는 비용을 냈고, 더 오래 보관하면 추가 비용을 냈다. 헤이스팅스에 따르면 고객이 몇 차례 이용한 뒤 다시 찾지 않는 문제가 나타났다.
넷플릭스는 1999년 9월 월 20달러에 DVD를 무제한으로 대여하고, 고객이 한 장을 반납하면 목록에 담아둔 다음 작품을 자동으로 보내는 구독 서비스를 출시했다. 얼마나 많은 고객이 구독을 유지할지는 출시 전에는 알 수 없었다.
2000년 초에는 LVMH에서 5,000만 달러를 투자받았지만, 곧 인터넷 기업에 대한 투자가 위축됐다. 넷플릭스는 현금을 아끼기 위해 감원했고, 블록버스터와 온라인 사업 협력 가능성도 논의했다.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가 블록버스터의 온라인 사업을 맡으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상대가 실제로 인수 제안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블록버스터와의 경쟁, 그리고 팀 문화
넷플릭스는 2002년 상장했다. 헤이스팅스는 훗날 상장이 경쟁사에 사업 정보를 드러냈다며, 비상장 상태를 2~3년 더 유지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당시 월마트의 DVD 대여 계획과 블록버스터의 움직임은 시장의 우려를 키웠지만, 그는 블록버스터가 본격적으로 온라인 대여에 나선 2004~2005년에야 실제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설명했다.
헤이스팅스가 내세운 조직 원칙은 자율과 책임이었다. 그는 뛰어난 동료가 모이면 세세한 규칙을 줄일 수 있다고 봤다. 넷플릭스는 관리자가 직원의 퇴사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지를 묻는 ‘키퍼 테스트’를 활용했다. 답이 아니라면 퇴직금을 지급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방식이다.
그는 이 원칙을 담은 초기 문화 자료가 동료 사이의 신뢰와 배려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넷플릭스가 지향한 팀에는 높은 성과뿐 아니라 정보를 미리 공유하고 서로 협력하는 능력도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스트리밍 전환에서 드러난 의사결정의 약점
2011년 헤이스팅스는 성장하고 수익도 내던 DVD 사업에 계속 의존하면 스트리밍에 집중하지 못할 것을 우려했다. 넷플릭스는 DVD 사업을 별도 서비스로 분리하고 스트리밍과 가격 체계를 나누려 했다. 두 서비스를 함께 이용하려는 고객에게는 비용이 늘었고, 헤이스팅스는 기존 고객의 가격을 유지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은 점도 실수였다고 말했다.
고객은 분리와 가격 변화에 강하게 반발했다. 헤이스팅스에 따르면 주가는 약 3분의 2 하락했고, 회사는 감원과 매출 전망 수정에 나섰다. 그는 고객 다수가 당시에는 스트리밍을 위해 그만큼의 변화를 원하지 않았으며, 전환 속도가 몇 년 빨랐다고 평가했다.
사후 검토에서 헤이스팅스는 주요 경영진 다수가 위험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과거 판단을 믿고 반대 의견을 강하게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넷플릭스는 큰 결정에 대해 주로 상위 약 50명이 찬반 정도를 공개적으로 밝히게 했다. 최종 결정권자는 의견을 모두 들은 뒤 결정한다는 원칙이다.
자체 콘텐츠와 세계 시장
넷플릭스는 2005년에도 DVD용 자체 콘텐츠를 시도했지만, 헤이스팅스에 따르면 당시에는 구독자 규모가 부족해 약 2년 뒤 사업을 접었다. 이후 테드 서랜도스가 추진한 《하우스 오브 카드》는 HBO와의 경쟁 끝에 확보한 작품으로, 2013년 공개돼 넷플릭스의 돌파구가 됐다. 헤이스팅스는 대본의 성공 가능성을 가려내는 판단은 자신보다 서랜도스와 그의 팀의 강점이었다고 말했다.
헤이스팅스는 자체 콘텐츠 제작 자체는 기존 방송사도 밟아온 경로라고 봤다. 그가 더 급진적이었다고 평가한 선택은 현지 방송사에 작품을 판매하는 대신, 인터넷을 통해 여러 나라의 소비자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넷플릭스는 2010년 스트리밍만으로 캐나다에 진출했고, 이후 중남미와 유럽으로 넓혀갔다. 그는 먼저 진출한 시장이 성장하고 결국 수익을 내면서 이 방식에 대한 확신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의 성장을 DVD의 보급, 경쟁사의 선택 같은 운과 25년에 걸친 노력의 결합으로 돌아봤다. 그의 설명에서 전환의 성공과 실패를 가른 것은 새 시장을 알아보는 판단만이 아니었다. 고객이 변화를 받아들일 속도를 살피고, 반대 의견이 실제 결정에 닿게 하는 일도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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