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다니엘 루베츠키는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 지역의 경제 협력을 촉진하려고 피스웍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제품의 사회적 목적에 관심을 보인 고객이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 다른 회사의 스낵바를 미국에 유통하며 매출을 늘렸지만, 제조사가 원료를 바꾼 뒤 홀푸드 판매를 잃었다. 루베츠키는 제품의 배합과 권리를 통제할 자체 브랜드 킨드를 만들었다.
- 킨드는 견과류가 보이는 투명 포장과 계산대 진열로 성장했다. 반면 월마트 입점 때는 매장에 제품이 제대로 진열됐는지 확인할 체계가 없어 실패했다.
- 2020년 마스가 킨드의 지배 지분을 인수한 거래에서 브랜드 가치는 약 50억 달러로 평가됐다. 루베츠키는 2024년 12월 남은 재무적 지분까지 모두 매각했다고 밝혔다.
피스웍스가 마주한 구매의 현실
루베츠키는 아버지의 홀로코스트 생존 경험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법학을 공부하던 그는 이스라엘과 아랍 지역 사람들이 함께 사업을 하면 관계를 쌓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93년 오슬로 평화 과정이 시작된 뒤 그는 이 구상을 피스웍스라는 사업으로 옮겼다.
첫 제품의 출발점은 이스라엘에서 맛본 건조 토마토 스프레드였다. 그는 이집트산 유리병, 튀르키예산 건조 토마토, 팔레스타인 농가의 올리브를 활용하는 방안을 생산자와 논의했다. 생산 방법을 찾은 뒤에는 미국 시장이 필요했다. 뉴욕 식료품점 자바스에 가져간 초기 제품은 가격과 소매점 마진, 표시 사항, 새는 기름까지 지적받았다. 여러 차례 수정한 끝에 입점 기회를 얻었다.
매장과 소비자의 반응은 달랐다. 루베츠키에 따르면 판매상들은 협력의 취지에 관심을 보이며 조언했지만, 거리 행사에서 그 취지만 설명하면 사람들은 듣고 지나갔다. 맛과 제품 특성을 설명하고 시식하게 했을 때 구매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는 사회적 목적이 구매를 뒷받침할 수는 있어도 제품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진열할 곳을 가리지 않았던 전략도 수정했다. 한 동네 식료품점 주인을 오래 설득해 스프레드 12병의 주문을 받았지만, 한 달 뒤에도 병은 먼지가 쌓인 채 남아 있었다. 그 경험은 첫 주문과 소비자 판매가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루베츠키의 기억에 피스웍스 매출은 첫해 3만3000달러, 이듬해 22만6000달러였고 약 100만 달러에 이른 뒤 정체됐다. 그는 대부분의 해에 흑자를 냈지만, 자신에게 연봉 2만4000달러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흑자였다고 설명했다.
유통권 상실이 자체 제품으로 이어지다
피스웍스를 운영하던 루베츠키는 전시회에서 맛본 살구·요거트·아몬드 바 ‘비 내추럴’을 별도 사업 부문에서 유통하기 시작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제품의 판매액은 50만 달러, 이후 100만 달러 수준까지 커지며 피스웍스의 중요한 수입원이 됐다.
이후 제품을 인수한 회사가 홀푸드의 기준에 맞지 않는 원료를 추가했다. 루베츠키는 미국 판매에 타격이 생긴다고 반대했지만 배합을 결정할 권한이 없었다. 제품이 홀푸드에서 빠지자 그는 제조를 직접 하지는 않더라도 배합과 제품 권리는 자신들이 통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팀은 마지막으로 자체 바를 만들어 보기로 했고, 2004년 킨드를 출시했다.
킨드라는 이름에는 몸에 이로운 원료, 맛,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라는 세 가지 뜻을 담았다. 루베츠키는 특히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제품은 이동하며 먹기 쉽고, 손에서 쉽게 녹지 않으며, 견과류의 형태를 살려야 했다. 그는 통아몬드를 유지한 채 대량 생산하는 일이 반죽 형태의 일반적인 바보다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처음에는 미국에서 생산자를 찾지 못해 호주의 제조 파트너와 시작했다.
진열의 우연과 준비 부족의 비용
킨드는 견과류와 과일을 볼 수 있는 투명 포장을 채택했다. 루베츠키는 소비자가 포장 그림보다 제품 자체를 보게 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투명 포장으로 쓸 수 있는 인쇄 면적이 줄고 제품 보존도 어려워졌지만, 초기부터 이를 브랜드 디자인의 중심에 뒀다.
홀푸드는 킨드를 기존 영양 바 진열대 어디에 놓을지 망설였다. 그 결과 여러 매장에서 별도 소형 진열대를 계산대에 놓을 기회가 생겼다. 루베츠키는 이 위치가 제품을 눈에 띄게 했고, 적은 공간에 여러 개를 진열할 수 있어 소매점에도 유리했다고 말했다.
2007년 무렵 월마트의 구매 담당자도 제품을 선택했지만 입점은 실패로 끝났다. 당시 킨드에는 매장별 판매와 진열 상태를 확인할 영업 인력이나 체계가 없었다. 루베츠키는 매장당 판매량이 0이라는 보고가 제품을 외면했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제품이 창고에서 매대로 나오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이후 운영 경험이 있는 존 리히가 경영에 합류했고, 루베츠키가 월마트 재입점을 서두르자 먼저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식 투자와 제품 확장의 기준
루베츠키는 초기에 비용을 아끼는 데 익숙해져 시식도 지출로만 봤다고 말했다. 2008년 시식 예산은 소매점에 제공한 샘플을 포함해 800달러였다. 그가 제시한 수치로는 2009년 시식 지출이 80만 달러로 늘었고, 몇 년 안에 2,000만 달러 규모가 됐다. 그는 시식한 사람의 약 10명 중 9명이 브랜드를 좋아했으며, 이후 구매로 한 달 안에 시식 비용을 회수했다고 주장했다. 스타벅스 등 계산대 진열과 시식이 성장 가속에 기여했다는 것도 그의 평가다.
제품 종류는 신중하게 늘렸다. 피스웍스에서 스프레드를 3종에서 15종까지 확장하면서 일부 제품의 품질이 떨어져 브랜드에 해를 줬다고 봤기 때문이다. 킨드는 초기 약 8가지 맛에 몇 년간 집중했고, 이후 건강함·맛·사회적 영향이라는 기준과 당 함량 등의 내부 기준 안에서 새 제품을 검토했다. 요거트 위에 그래놀라를 얹은 제품에는 2~3년을 썼지만, 시장 시험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쳐 출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50억 달러 평가와 남겨 둔 사업
2009년 외부 투자자가 들어오면서 피스웍스와 킨드는 분리됐다. 루베츠키는 피스웍스의 목적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다른 경영자에게 사업을 맡겼고, 자신의 기억으로는 2018년 무렵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와 별도로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이 함께 참여하는 원보이스 운동에도 시간을 썼다.
마스와의 거래는 해외 시장 문제에서 시작됐다고 루베츠키는 설명했다. 킨드가 중국에 공식 진출하기 전, 한 판매자가 미국에서 제품을 대량으로 사들여 중국에서 수백만 달러어치를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킨드는 처음에는 미국 밖 판매 권리만 넘기려 했지만, 루베츠키에 따르면 대기업들은 결국 사업 전체를 인수할 수 있기를 원했다. 진행자 가이 라즈의 설명에 따르면 마스는 2017년 소수 지분을 샀고, 2020년 약 50억 달러의 기업 가치로 평가된 거래에서 지배 지분을 인수했다. 루베츠키는 마스가 2024년 12월 나머지 지분을 인수했으며, 그때 자신의 재무적 지분도 전량 매각했다고 바로잡았다.
루베츠키는 킨드의 성공에 노력과 운이 모두 작용했다고 말했다. 피스웍스에서 배운 구매 현실, 유통권을 잃은 경험, 킨드의 제품과 진열 방식, 이후의 투자 판단이 이어졌지만, 그는 같은 규모의 성공을 반복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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