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브라이언 스미스와 동업자 더그는 500달러를 모아 호주산 양가죽 부츠 샘플 여섯 켤레를 주문했다. 이후 들여온 500켤레 중 첫해에 팔린 것은 28켤레, 매출은 1,000달러였다.
  • 서핑 잡지에 모델을 내세운 광고는 반응이 약했다. 실제 젊은 서퍼를 촬영한 광고로 바꾸자 스미스의 설명에 따르면 연매출이 3만~5만 달러 수준에서 약 20만 달러로 뛰었다.
  • 판매가 늘어도 다음 시즌 물량을 먼저 생산할 돈이 부족했다. 스미스는 자금을 구하는 과정에서 지분을 잃었고, 한때 회사 소유권 전체를 넘긴 뒤 다시 되찾았다.
  • 1995년에는 주문 증가에 필요한 추가 생산비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해 데커스에 UGG를 1,500만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으로 매각했다.

호주에서 흔한 부츠, 미국에서는 팔리지 않았다

회계사로 약 10년 일한 스미스는 새로운 사업거리를 찾으러 미국 캘리포니아에 왔다. 원래는 미국에서 호주로 가져갈 상품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잡지에 실린 양가죽 부츠 사진을 보고 방향을 바꿨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호주인 둘 중 하나는 어떤 형태로든 양가죽 신발을 갖고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호주에서 ‘어그 부츠’는 특정 브랜드보다 제품을 가리키는 이름에 가까웠다.

스미스와 더그는 500달러로 샘플을 구해 미국 내 판매를 시작했다. 일반 신발 가게에서는 주문을 받지 못했다. 서핑 가게에서는 좋은 반응을 들었지만, 막상 재고를 들여놓겠다는 곳은 없었다. 두 사람은 2만 달러의 자금을 모아 약 1만5,000달러어치인 500켤레를 주문했으나 첫해 판매량은 28켤레에 그쳤다. 스미스는 남은 부츠를 방에 쌓아두고 장터와 말리부 해변 주차장의 승합차에서 직접 팔았다.

그가 서퍼를 첫 고객으로 본 데에는 제품의 쓰임이 있었다. 스미스는 양가죽이 차가운 발을 따뜻하게 하고, 서핑 뒤 젖은 발의 습기를 밖으로 내보낸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 효용을 판매점과 고객에게 이해시키는 일은 별개였다.

광고 속 사람이 고객의 신뢰를 갈랐다

스미스는 초기 서핑 잡지 광고에 외모가 좋은 모델을 세웠다. 매출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한 판매점에서 만난 어린 서퍼들은 광고 속 모델이 실제로 서핑을 할 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스미스는 광고가 고객을 끌어들이기는커녕 제품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받아들였다.

이후 실제 젊은 서퍼들과 해변에서 사진을 찍어 광고에 썼다. 스미스는 연매출이 이전의 3만~5만 달러 수준에서 약 20만 달러로 뛰었다고 회고했다. 판매 현장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발견했다. 매장 직원이 부츠의 착용감과 관리법을 설명하지 못하자, 매장이 여섯 켤레를 들이면 점장에게 한 켤레를 무료로 주는 방식을 도입했다. 직접 신어 본 직원이 고객에게 제품을 설명하도록 한 것이다.

매출 증가가 자금난을 끝내지는 못했다

UGG는 계절에 따라 판매가 크게 달랐다. 스미스는 부츠값과 여러 발 크기에 맞춘 재고 부담 때문에 판매점이 제품을 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신 역시 주문을 받아도 생산비를 먼저 마련해야 했다. 그는 회계 경험은 있었지만 앞으로 필요한 자금을 예측하고 조달하는 데는 약했다고 돌아봤다.

자금 압박 속에 새 투자자들과 회사를 운영하기로 했을 때, 스미스는 자신도 25%를 소유하는 동업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계약을 다시 확인하고서야 상표 분쟁이 해결되기 전에는 자신의 주식이 발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수수료를 받는 영업 담당자로 일했고, 분쟁이 정리된 뒤에도 주식을 넘겨받기 전에 투자자가 사망했다. 이후 스미스는 공급 중단과 자금난을 겪었다. 호주의 한 제혁업자가 다른 제조업체를 통해 부츠를 공급하면서 판매를 이어갈 수 있었고, 스미스는 보험금 합의금 20만 달러로 투자자의 유족에게 약속한 금액을 지급해 회사 소유권을 되찾았다고 설명했다.

1989년 UGG는 스미스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으로 14만 달러의 이익을 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사업에 필요한 것은 매 시즌 제조업체의 대금을 보장할 신용장, 즉 대금 지급을 약속하는 금융 수단이었다고 회고했다. 자금 조달을 늦게 시작할수록 급하게 구해야 할 금액은 더 커졌다.

서핑 가게에서 패션 매체까지

스미스는 서핑 시장에 이어 스키, 스노보드, 청소년 하키 시장으로 판매 대상을 넓혔다. 눈과 얼음에서 미끄럽던 기존 밑창을 바꾼 제품도 만들었다. 1992년 매출은 580만 달러였지만, 진행자 가이 라즈가 짚었듯 당시 UGG는 훗날처럼 전국적으로 알려진 브랜드는 아니었다.

패션 시장으로 이어지는 계기는 스타일리스트였다. 더그의 제안에 따라 스미스는 할리우드 스타일리스트들에게 편지를 보냈고, 응답한 약 400명에게 부츠를 보냈다. 이후 유명인 사진에 UGG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미스는 파멜라 앤더슨이 부츠를 신은 사진 등을 모아 USA 투데이 패션 담당자에게 보여줬고, 신문은 양가죽 신발을 다룬 기사를 실었다. 스미스는 이 무렵 UGG를 ‘편안한 일상 신발’로 내세웠다.

모든 대규모 광고가 같은 결과를 낸 것은 아니었다. 1994년 회사는 라디오 진행자 러시 림보의 방송에 3개월간 약 50만 달러를 썼다. 스미스는 이 광고에 반대했지만 이사회 결정에 따랐다. 방송 뒤 문의 전화가 몰렸다는 그의 회고와 달리, 진행자가 제시한 매출은 1993년 900만 달러에서 1994년 1,100만 달러로 늘었다. 스미스는 광고가 브랜드를 크게 도약시키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주문 전망과 생산 능력 사이에서 매각을 택했다

1995년 스미스는 시즌 전 주문을 바탕으로 연매출이 1,800만~2,000만 달러에 이를 수도 있다고 봤다. 이는 실현된 매출이 아닌 그의 전망이었다. 동시에 그는 늘어날 수요에 맞춰 제품을 확보하려면 추가로 500만~700만 달러가 필요하고, 이를 조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해 스미스는 샌들 브랜드 테바를 판매하던 데커스의 더그 오토와 매각 논의를 시작했다. 스미스의 설명에 따르면 테바는 여름, UGG는 겨울에 강해 두 사업의 판매 시기도 달랐다. 실사를 거쳐 데커스는 UGG를 1,500만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에 인수했다. 스미스는 이후 두 시즌 동안 마케팅과 영업을 돕는 자문 역할을 했다.

인수 뒤 데커스는 여성 패션 잡지 광고 등으로 브랜드를 확장했다. 스미스는 오프라에게 보낸 부츠가 주목받은 시기와 패션 시장을 겨냥한 활동이 맞물렸다고 봤다. 그는 자신이 회사를 운영할 때 그런 수요가 갑자기 생겼다면 생산 자금이 부족해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론

스미스가 회고한 UGG의 성장은 제품을 알아보는 고객을 찾고, 그 고객이 신뢰할 방식으로 보여 주는 과정이었다. 동시에 매출과 주문이 늘어날수록 생산 자금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는 문제가 반복됐다. 1995년의 매각은 수요 증가의 전망과 이를 감당할 자금의 한계가 겹친 시점에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