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셰프와 이언 머리 형제는 사무실 복장이 캐주얼해지던 1998년, 마서스비니어드의 풍경을 담은 넥타이 800개로 사업을 시작했다.
- 첫 제품은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로 제작했다. 섬의 소매점에서 반응을 확인한 뒤 다른 지역의 매장과 소규모 행사로 판매처를 넓혔다.
- 고객과 제작자의 제안을 받아 가방, 속옷, 의류로 확장했지만, 첫 직영점에서는 계절성과 운영 경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 2008년에는 재고를 할인 유통업체에 처분하고 은행 신용한도를 사용했다. 형제는 재고 처분이 위기를 넘기는 데 중요했다고 회고했다.
휴양지의 기억을 넥타이에 담다
두 형제는 뉴욕에서 각각 광고와 홍보 일을 했지만, 그 일을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족 여행 중 넥타이 사업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당시 형제가 본 시장에는 100달러가 넘는 무늬 넥타이와 25~30달러짜리 장식용 넥타이가 있었다. 이들은 그 사이 가격대에서 색을 살리고, 어린 시절 여름을 보낸 마서스비니어드의 느낌을 담으려 했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실크 수입업자, 디자이너, 봉제업자 등을 찾아갔다. 섬의 도로 표지판과 섬 모양, 고래, 물고기에서 첫 무늬를 만들었다. 기존 넥타이를 뜯어 안감과 재단 방향이 매듭과 촉감에 어떤 차이를 내는지도 살폈다. 첫 생산분은 네 가지 무늬를 두 가지 색상으로 만든 800개였다. 형제의 추산으로 제작에 약 8,000~1만 달러가 들었고, 자금은 여러 신용카드의 현금서비스로 마련했다. 두 사람은 1998년 5월 직장을 그만뒀다.
섬에서 확인한 수요, 길에서 배운 판매
이언은 마서스비니어드의 한 소매점에 넥타이를 들고 찾아갔다. 형제가 제시한 가격은 소매가 65달러, 도매가 30달러였다. 그 매장은 60개를 주문했다. 다른 매장은 구입한 넥타이 일부를 낸터킷 매장으로 옮겼는데, 형제에 따르면 그곳의 판매가 마서스비니어드보다 약 두 배 많았다. 이후 형제는 낸터킷의 지형과 표지판을 활용한 무늬도 만들었다. 처음 구상한 한 지역의 기념품을 넘어설 가능성을 본 계기였다.
그해 가을에는 미국 동부의 의류 매장을 직접 돌았다. 넥타이가 팔리지 않는다는 거절도 많았다. 형제는 매장에 머물며 진열과 판매를 돕고 업계를 배웠다. 학교와 교회 등의 작은 연말 행사에서도 판매했다. 행사에서 제품을 산 고객이 인근 매장에 빈야드 바인스를 찾으면서 입점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었다. 형제는 초기에 언론인에게 넥타이를 보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알릴 기회도 찾았다.
넥타이 밖으로 넓어진 브랜드
넥타이는 크기별 재고가 필요 없고 매장 공간을 적게 차지했다. 형제는 넥타이 한 개의 제작 원가를 약 12~13달러로 기억했다. 일부 초기 무늬는 오래 판매할 수도 있었다. 고객을 통해 알게 된 한 유통업계 인사는 다른 제품을 늘리기 전에 넥타이 연매출 500만 달러를 목표로 삼으라고 조언했다. 형제는 그 목표를 달성한 뒤 제품군을 넓혔다고 말했다.
선물을 사던 여성 고객들은 자신이 쓸 제품도 원했다. 형제는 넥타이 무늬를 활용한 가방을 만들었다. 한 제작 관계자는 같은 무늬의 남성용 속옷을 제안하고 직접 견본을 가져왔다. 형제는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견본을 본 뒤 생산했다. 이어 넥타이가 전하던 생활 방식을 옷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고 보고 폴로 셔츠와 반바지 등으로 범위를 넓혔다.
첫 직영점의 시행착오
2005년 무렵 첫 매장을 마서스비니어드에 열었다. 형제는 공간을 임차하는 대신 입지가 좋지 않은 작은 건물을 샀고, 소매점 운영 경험이 적은 직원들에게 매장을 맡겼다. 다음 해에는 옆 건물을 사서 아동 매장도 열었다. 이름의 배경이 된 섬이었지만, 판매가 몰리는 기간은 약 100일이었다. 형제는 나중에 계절성이 약한 곳에 먼저 매장을 냈어야 했다고 인정했다.
이후 기존 도매 고객인 코네티컷의 의류 매장 운영 가족과 협력했다. 상대는 입지 선정과 매장 운영을 도왔고, 함께 여러 매장을 열었다. 경기침체가 다가올 무렵에는 합의를 거쳐 형제가 해당 매장들의 지분을 다시 사들였다. 형제는 이 협력이 이후 직영점 확대의 기반이 됐다고 평가했다.
금융위기와 재고 관리
대담에서 형제는 2008년 매출을 1억 달러로 바로잡아 말했다. 금융위기가 닥치자 숙련된 경영진을 보강하고 매장 임대계약을 늘리는 한편, 재고를 할인 유통업체에 적극적으로 처분했다. 고가 의류 수요가 약해질 때 물건을 쌓아두지 않기 위한 결정이었다. 브랜드가 할인 매장에 노출되는 데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형제는 재고 처분이 당시 회사를 지키는 데 중요했다고 봤다. 은행 신용한도에서도 자금을 인출했다.
형제는 외부 투자 유치도 검토했으나 실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사업의 현금흐름으로 매장을 열었고, 이후에는 은행 신용한도를 사용했다. 이들은 수요보다 재고가 많아진 해가 더 어려웠다고 돌아봤다.
넥타이의 색과 무늬로 시작한 빈야드 바인스는 고객 반응에 따라 제품을 늘리고 매장 운영을 배워 갔다. 형제의 회고에서 성장을 가른 문제는 제품을 더 만드는 일만이 아니었다. 어디서 팔 것인지, 남은 재고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계속 판단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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