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릴리 캔터와 세레나 듀건은 2003년 세레나앤릴리를 별도 회사로 설립하고 지분을 절반씩 나눴다.
- 첫 상품을 만들기도 전에 전문 소매점에서 약 10만 달러의 주문을 받았다. 두 사람은 주문 고객에게 50% 선금을 요청해 생산 자금을 마련했다.
- 회사는 도매에서 소비자 직접 판매로 확장했다. 캔터에 따르면 직접 판매 첫해 매출은 500만 달러였고, 다음 두 해에는 각각 1천만 달러와 2천만 달러였다.
- 성장 자금을 댄 투자자들은 성장 속도와 수익성에 관해 다른 입장을 보였다. 한 투자자를 매수해 내보내기 위해 받은 자금의 우선권 조건은 이후 자금 조달과 인수 협상을 어렵게 했다.
매장에서 시작된 공동 창업
캔터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난 뒤 캘리포니아 밀밸리에 유아·아동용품 매장을 열었다. 듀건은 실내 장식과 벽화 작업을 하며 유아·아동 공간 디자인 경험을 쌓았다. 듀건이 자신의 작업물을 매장에 남기자 캔터는 그 디자인을 유아 침구에 적용할 가능성을 봤다.
두 사람은 2003년 세레나앤릴리를 매장과 별개의 회사로 만들었다. 캔터가 초기 자금 5만 달러를 넣되 소유권은 절반씩 갖기로 했다. 캔터는 상품 운영과 자금 관리를, 듀건은 디자인과 창작 작업을 주로 맡았다. 출발 상품은 유아용 침구였다.
재고보다 먼저 들어온 주문
두 사람은 생산 시설을 갖추기 전에 견본을 만들고 상품 사진을 찍어 전문 소매점에 카탈로그를 보냈다. 2004년 카탈로그가 도착할 무렵, 기존 고급 유아 침구 브랜드 하나가 독립 소매점 대상 판매에서 대형 유통 채널로 방향을 바꿨다. 캔터는 이 시점이 맞물리며 수주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몇 주 만에 주문액은 약 10만 달러에 이르렀지만, 납품할 재고와 생산비는 없었다.
두 사람은 주문한 소매점에 연락해 물량을 확보하려면 주문액의 50%를 먼저 내야 한다고 요청했다. 캔터의 기억으로는 거절한 곳이 없었다. 이 선금으로 초기 생산에 필요한 운전자금 일부를 마련했고, 제품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생산했다. 다만 첫 포장 상자는 배송 중 다수가 손상됐다. 보기 좋은 창을 낸 구조가 운송에 필요한 강도를 떨어뜨린 탓이었다.
고객 요청을 따라 넓어진 상품군
2005년 말 매출은 약 75만 달러였다. 캔터는 기존 매장과 새 회사를 함께 운영하기 어려워 그해 말 매장을 팔았다. 2006년 말 매출은 약 150만 달러, 2007년 말에는 400만 달러에 도달했다.
소매점과 고객은 아이가 자란 뒤에도 같은 분위기의 방을 꾸밀 수 있는 상품을 원했다. 이에 회사는 2007년 아동용 침구를 선보였고, 가구·러그·조명·페인트 등으로 범위를 넓혔다. 상품이 늘수록 생산과 재고에 먼저 들어갈 돈도 더 필요해졌다.
급하게 필요했던 150만 달러
2007년 상품 출시를 준비하면서 두 사람은 약 150만 달러를 조달하려 했다. 기업가치에 관한 의견을 구하러 간 사모투자 회사에서 한 장의 수표로 전액을 투자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계약서를 검토한 변호사는 지배권 관련 조항을 문제 삼았다. 일부 조항이 수정된 뒤에도 급여 문제를 놓고 이견이 생겨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생산비 지급 시한이 다가오자 두 사람은 친구와 가족에게 자금을 요청했다. 캔터에 따르면 필요한 150만 달러를 17일 만에 모았다. 이후에도 회사는 수요를 따라 상품을 공급하기 위해 거듭 자금을 구해야 했다.
직접 판매의 성장과 투자자 갈등
회사는 처음에는 도매로만 판매했고, 2007년에는 약 600~800개 매장에서 상품을 취급했다. 이후 성인용 침구와 생활 공간 상품을 담은 소비자용 카탈로그 8만5천 부를 시험 발송하며 직접 판매에 나섰다. 캔터는 금융위기 때 기존 도매 채널의 절반가량이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직접 판매 첫해부터 3년간 매출은 캔터의 설명대로 500만·1천만·2천만 달러로 늘었다. 매출 증가와 별개로 생산에 필요한 현금은 계속 부족했다.
추가로 참여한 한 패밀리오피스는 성장 속도를 낮추고 수익성을 높이길 원했다. 반면 기존 벤처 투자자는 성장을 중시했다. 캔터는 돌이켜보면 수익성을 강조한 판단에도 일리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다만 투자자들 사이의 의견 충돌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 패밀리오피스는 투자 손상을 주장하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회사는 해당 투자자의 지분을 매수해 갈등을 끝내려 했다.
기존 주요 투자자가 매수 자금을 댔지만, 새 자금에는 투자금의 두 배를 먼저 회수하고 지분 몫에도 참여하는 우선권이 붙었다. 캔터는 이 조건 때문에 후속 투자를 받기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받은 두 건의 인수 제안도 대금의 상당 부분이 인수 후 성과에 따른 지급액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새 대주주와 창업자의 퇴장
첫 오프라인 매장인 햄프턴 매장을 본 다른 패밀리오피스가 지분 인수에 나섰다. 이 거래에서는 기존 주주가 제시된 가격에 지분을 팔거나, 보통주로 전환해 계속 보유할 수 있었다. 새 대주주는 과반 지분을 확보했고, 회사는 이후 1년에서 1년 반 사이에 매장을 더 열었다.
캔터는 오랜 운영과 갈등 끝에 경영에서 물러나기로 하고 후임 최고경영자를 찾았다. 인터뷰에서 확인한 그의 마지막 근무일은 2015년 말이었다. 듀건도 역할이 바뀐 뒤 약 6개월 만에 회사를 떠나 외부에서 시간제로 관여했다. 두 사람은 현재 회사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세레나앤릴리의 매출 성장은 주문 확보, 상품 확장, 판매 채널 전환과 함께 이뤄졌다. 두 창업자의 설명에서 그 과정은 계속된 운전자금 수요와 투자 조건을 둘러싼 갈등의 기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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