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페이리스 슈즈 사장이던 맥신 클라크는 고객과 멀어진 경영 업무를 떠나,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매장을 구상했다.
- 이웃 아이의 한마디에서 출발한 빌드어베어는 인형을 고르고, 솜을 채우고, 이름을 붙이고, 옷을 입히는 과정을 상품으로 만들었다.
- 1997년 첫 매장은 클라크가 첫해 전체에 예상했던 만큼의 매출을 첫 3개월에 올렸다. 그러나 모든 대형 쇼핑몰에서 통하지는 않았다.
- 2008년 금융위기에는 출점을 줄이고 임대료를 재협상했다. 클라크는 연말 수요를 낙관해 인력 감축이 늦어진 일을 자신의 실수로 꼽았다.
고객을 가까이서 보던 유통 경영자
클라크는 백화점 체인 메이 컴퍼니에서 경력을 쌓아 1992년 계열사 페이리스 슈즈의 사장이 됐다. 하지만 직위가 높아질수록 자신이 좋아하던 매장과 고객에게서 멀어진다고 느꼈다. 회사가 외부 이메일 사용을 허용하지 않는 등 새 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에도 답답함을 느꼈다. 그는 4년 뒤 회사를 떠났지만, 다음에 만들 사업은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에게 고객 관찰은 익숙한 일이었다. 경력 초기에 여성 의류를 담당할 때는 백화점 자체 신용카드 기록을 살펴, 해당 부서 고객이 함께 사는 신발과 다른 상품을 조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협력 업체의 광고비를 활용한 카탈로그를 만들었고, 발행 직후 실린 상품이 모두 팔렸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웃 아이의 말에서 시작된 매장
클라크는 아이를 위한 사업을 생각하며 친구와 이웃의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이웃 아이 케이티와 잭을 데리고 비니 베이비 인형을 찾으러 갔지만 매장에서는 이미 품절이었다. 실망한 케이티는 그런 인형이라면 직접 만들 수 있겠다고 말했다. 케이티가 뜻한 것은 클라크의 집에서 하는 만들기 놀이였지만, 클라크는 아이가 매장에서 인형을 만드는 구상을 떠올렸다.
클라크는 기존 인형 공장을 사서 고객이 제작 과정을 보는 매장으로 바꿀 수 있을지 조사했다. 결국 기존 회사를 인수하는 대신 직접 사업 계획을 쓰고 매장을 만들었다. 초기 충전 기계는 가구에 솜을 넣는 기계를 구입해 외관을 바꾼 것이었다. 아이는 인형을 고르고 솜을 채운 뒤 털을 손질하고 이름을 붙였다. 인형 속 심장은 별도 판매품이 아니라 기본 과정에 포함됐다. 분실한 인형을 돌려줄 수 있도록 식별 정보도 넣었다.
클라크는 각 단계를 새로 발명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경험으로 묶었다고 설명했다. 인형 자체뿐 아니라 아이가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고 옷을 골라 입히는 일이 매장의 중심이었다.
첫 매장의 성공과 확장 조건
첫 빌드어베어 매장은 1997년 10월 세인트루이스에서 문을 열었다. 클라크에 따르면 개점 다음 날 아침부터 줄이 섰고, 10월부터 12월까지의 매출이 자신이 예상한 첫해 전체 매출과 같았다. 첫 매장의 성과 뒤 임대인들은 새 지역에 매장을 유치하려고 인테리어 비용의 일부를 지원했다. 매장은 1999년 말 14곳, 2007년 250곳으로 늘었다.
성공한 입지와 실패한 입지는 달랐다. 클라크는 관광지 머틀비치 매장은 이듬해 넓혀야 할 만큼 잘됐지만, 마이애미의 아벤투라 몰 매장은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쏘그래스 밀스에서도 기대만큼 성과가 나지 않았다. 그는 그곳을 찾은 일부 관광객이 인형 체험보다 의류 쇼핑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쇼핑몰 안에서도 아동복 매장 근처가 아동 매장에서 먼 위치보다 성과가 좋았다고 했다. 가족이 찾아오는 대형 쇼핑몰이라는 조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셈이다.
금융위기 때 줄인 사업과 늦어진 결정
회사는 2004년 상장했고, 2006년에는 영국의 유사 사업 베어 팩토리를 인수했다. 이후 금융위기가 닥치자 2008년과 2009년에 계획했던 출점을 줄이고 임대 계약을 재협상했다. 직접 만드는 인형 사업과 모형 자동차 사업에서도 철수했다. 클라크는 기존 사업이 어려운 때 다른 구상까지 이어갈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가장 후회한 결정은 2008년 크리스마스 수요를 낙관한 일이었다. 그는 아이에게 줄 곰 인형은 계속 팔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약 50~75명을 감원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더 일찍 판단했다면 이들이 2009년 1월보다 일자리를 찾기 쉬웠을 것이라는 게 클라크의 평가다. 그는 회사의 생존 자체보다 위기를 통과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울지를 걱정했다고 말했다.
창업자 이후의 빌드어베어
클라크는 사업을 정비한 뒤 2013년 6월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후임자는 장난감 회사 해즈브로와 신발 회사 스트라이드 라이트에서 일한 샤론 프라이스 존이었다. 클라크는 처음에는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후임자의 방식이 자신의 방식과 달라도 결과를 보고 신뢰하게 됐다고 말했다.
진행자 가이 라즈는 방송에서 회사의 연매출이 5억 달러를 넘는다고 소개했다. 클라크는 스포츠, 헬로키티, 디즈니와의 협업을 사업 계획에 담았고 실제 협업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성장 과정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클라크는 코로나19 시기에 자신과 후임자 모두 회사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빌드어베어의 출발점은 아이가 인형을 좋아한다는 관찰이었다. 클라크가 만든 사업은 그 인형을 고르고 완성하는 시간을 매장 경험으로 바꿨다. 이후의 입지 실패와 금융위기는 그 경험을 파는 사업에도 위치 선정과 비용 판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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